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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칼럼
작성일 2023-03-16 05: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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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출과 소비 '새로운 패러다임' 찾아야
韓 경제, 50년만의 위기 데자뷔“50년 전처럼 모든 확실성이 무너지고 있다.”

무역수지 적자 일시적 아닌
구조적 형태로 고착화 우려

미·중 신냉전 장기화 예상돼
중국과 '헤어질 결심' 필요
기존 성장전략 환골탈태해야

수출과 소비 '새로운 패러다임' 찾아야한국 경제가 난기류에 휩싸였다. 무역수지 적자가 역대 최대로 확대되면서 올해 1월 경상수지도 45억2000만달러 적자로 돌아섰다. 

숫자를 보자. 한국의 최대 무역상대국인 중국으로의 수출이 30% 이상 급감했고, 수출의 최전선에 있는 반도체 수출이 반토막 났다. 코로나 팬데믹으로 짓눌렸던 해외여행이 재개되면서 여행수지도 악화됐고, 서비스수지도 나빠졌다. 상품수지는 4개월 연속 적자를 기록했다. 외환위기 전후인 1996년 1월부터 이듬해 4월까지 16개월 연속 적자를 기록한 뒤 처음이다.

무역주도 경제인 한국은 경상수지 적자에 늘 경계심을 늦추지 않아야 한다. 지속적인 경상수지 적자는 대외부채 증가, 원금 상환과 이자 부담 증대로 이어지고 동시에 수반되는 원·달러 환율의 불안정성은 국가 신용등급에까지 부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다.

1997년 외환위기는 이런 부정적 영향이 현실화된 경우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는 역설적으로 그 위기의 진앙이 바로 미국이었기 때문에 극복할 수 있었다. 1997년과 2008년의 경제위기에 비해 지금의 상황은 아직 위기라고 하기에는 빠르다. 원·달러 환율이 소폭의 등락을 반복하고 있지만 급격한 불안정세를 보이고 있지는 않다. 그간의 위기 경험 덕분에 외환보유액도 상당한 정도 확보돼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낙관은 금물이다.

그동안 한국 경제는 수출 호조 덕분에 상품수지 흑자로 고질적인 서비스수지 적자를 메웠지만, 이번에는 상품수지와 서비스수지 모두 부진했기 때문에 사상 최악의 경상수지 적자를 기록했다. 이는 일시적인 것이 아니라 새로운 구조적 형태로 고착화할 우려가 있다.

문제의 핵심은 한국 제조업을 지탱해 온 패러다임이 흔들리고 있다는 것이다. 한국은 어느 주요 7개국(G7)보다도, 어느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보다도 제조업 비중이 높다. 

중국의 개혁개방으로의 선회, 20세기 냉전의 종식과 함께 본격화된 ‘국경 없는 세계화’를 적극 활용했기에 세계적인 제조업 국가, 세계 유수의 중화학공업국가, 세계 최고의 정보기술(IT) 국가로 부상할 수 있었다. 한국 제조업은 한국의 지리적 공간을 넘어 세계로 진출했다. 이 과정에서 중국에서의 공장 설립과 투자는 확대 성장 경로를 가능하게 했다.

경제 발전 초기 단계에 있던 중국은 한국의 자본과 기술이, 한국은 중국의 노동과 지리적 공간이 필요했다. 20세기 선진 기술 기업의 하청 공정에 머물던 한국 기업들이 21세기 글로벌 기업으로 떠올랐다. 

같이 성장 궤적을 타고 상승한 중국은 점차 한국을 서로 다른 비교우위를 가진 협력 상대가 아니라 같은 목표를 향해 경쟁하는 국가로 인식하기 시작했다. 

투자를 인질로 삼아 기술이전을 강요하는 사례가 속출했다. 결정적인 건 미·중 관계가 경쟁적 협력관계에서 갈등과 대립으로 변화한 것이다. 미국 도널드 트럼프 전 행정부가 중국을 상대로 시작한 무역전쟁은 조 바이든 행정부에서는 더욱 정교하고 치밀한 중국의 기술패권 저지로 이어지고 있다. 미·중 신냉전 시대의 본격화와 한국 제조업의 현재를 가능하게 했던 패러다임이 공존할 수 있는 공간은 얼마나 될까.

중국 관광객의 지갑에만 기대하는 여행수지 개선도 이젠 ‘헤어질 결심’을 해야 할 듯하다. 중국 당국은 최근 자국민의 해외 단체여행 허용 국가를 40곳 추가하면서 한국을 배제했다. 중국은 지난 2월 태국, 인도네시아 등 20개국에 대해 자국민 단체여행을 허용하면서 한국을 배제한 바 있다. 한국과 중국이 상호 단기비자 발급을 중단하는 등 갈등 상황이 있었던 그때와 달리 이번엔 양국이 비자 발급을 정상화하고, 검역 조치도 완화한 뒤다. 미국과 일본도 한국과 마찬가지로 중국의 1·2차 단체여행 허용 국가 명단에 포함되지 않았다.

한국 경상수지 불안정의 상당 부분은 한국이 혼자서 통제할 수 없는 외생적 요인 때문이다. 미·중 신냉전의 본격화, 코로나 팬데믹의 정치화, 푸틴의 우크라이나 침공 후 새로 형성된 자유 진영과 권위주의 진영 간 대립이 바로 그것이다. 

이런 외부 요인은 상당 기간 지속될 것으로 예측된다. 지금의 난기류는 시간이 지나면 사라지는 일시적인 것이 아니다. 지금까지 한국 경제의 성장을 지탱한 기본 패러다임의 환골탈태에 대한 시대적 요청은 이미 오래된 미래다.
최병일 한국고등교육재단 사무총장·이화여대 교수


▲ 韓 경제, 50년만의 위기 데자뷔

프랑스 일간지 르몽드는 최근 경제 상황을 1970년대 스태그플레이션 상황과 비교하며 이렇게 말했다. 당시 산유국의 감산이 이어지자 배럴당 2.9달러였던 원유는 한 달 만에 12달러까지 치솟았다.

 1차 오일쇼크다. 미국 경제성장률은 1973년 6.5%에서 이듬해 -0.5%까지 떨어졌다. 우리나라도 그랬다. 1974년 물가상승률은 1년 만에 25% 상승했다. 특히 전기 요금은 연간 85%나 치솟았다. 명동과 시청 앞 네온사인이 70% 이상 꺼질 정도였다. 1960년대 초 15원 수준이었던 짜장면값은 150원까지 올랐다. 그런데도 한국의 경제성장률은 건실했다. 당시 한국 경제에 무슨 일이 일어났던 걸까.

1968년 설립된 삼성전자는 1974년 12월 한국반도체를 인수한다. 삼성전자도 대외적으로 경영난을 겪고 있었지만, 이건희 삼성 선대회장은 부가가치가 높은 반도체에 투자해야 한다는 확신을 가지고 있었다. 이때 이뤄진 인수합병(M&A)이 대한민국 반도체 신화의 첫걸음이 됐다. 

같은 시기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은 거북선이 그려진 500원짜리 지폐를 보여주며 “우리 민족은 500년 전에 이 배를 건조했다”며 영국에서 8000만달러를 유치했다. 그리고 그리스로부터 두 척의 선박을 선주문받았다. 정 회장은 “돈을 벌려면 세계의 돈이 몰리는 곳으로 가야 한다”며 주위 반대를 무릅쓰고 중동에 도전장을 던졌다. 정 회장은 공기(工期)까지 단축하며 건설 프로젝트를 완수했다.

최종현 SK그룹 선대회장은 1974년 사재를 털어 민간 기업 최초로 한국고등교육재단을 설립했다. 장학사업은 외환위기 상황에도 지속돼 현재까지 장학생 4261명을 지원했고 세계 유명대학 박사 861명을 길러냈다. 한국 경제를 이끈 경영인들이 맹활약한 그해 ‘제1회 상공의 날 기념식’이 열렸다. 2000여 명의 상공인이 국립극장에 뭉쳐 결의문을 낭독했다. “기업가정신과 경영합리화로 해외 인플레 요인을 최대한 흡수하고, 공정한 유통 질서를 확립하는 한편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다하겠다”는 내용이었다.

이로부터 50년이 흘러 지난 13일 ‘상공의 날’ 행사가 열렸다. 올해는 ‘50년의 도전 100년의 비전’을 모토로 기업들의 지난 반세기를 격려하고 다음 한 세기를 내다보는 자리로 마련됐다. 행사는 단 하루였지만 대전환과 ‘3고(高)’ 행진을 이어가는 우리 기업에 남다른 의미가 있는 날이었다. 그 어느 때보다 기업의 역할이 중요해진 시기다. 앞으로의 100년을 바라보며 우리의 안보까지 책임질 첨단기술을 잉태하고, 첨단기술로 사회의 사각지대를 메워가는 ‘신(新)기업가정신’이 요구되는 때다.
우태희 대한상공회의소 상근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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