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어컨 없는 도시의 여름나기
흙을 가득 실은 덤프트럭이 아스팔트를 지나 간 길이 진흙처럼 바퀴자국을 남기며 아지랑이가 피어오르는 7월의 태양에 그 푸르름을 자랑하는 초목도 시들시들한 2017년,
강과 바다, 물가에서조차 이글거리는 한낮의 햇살은 거리의 사람들을 초주검으로 만든다.
흙이던 땅이 아스팔트나 콘크리트로 덮인 후부터 도시의 한여름은 인간들을 징그럽게 여겨지는 계절로 떠올리도록 했다.
1973년경에도 올해 만큼 뜨거운 해였다.
책보자기를 각개총 메듯 어깨에 두르고 비포장도로를 따라 집으로 돌아오면 책까지 흥건하게 젖곤했던 그시절, 올해 정도의 가뭄이었기에 통학을 하는 도롯가 저수지에서는 가까이는 물론 멀리 안강과 청하, 흥해에서 온 사람들이 물이 거의 어른들 키만큼만 남기고 빠진 웅덩이 같은 물반고기반인 저수지에서 팔둑만한 붕어와 가물치를 도롯가로 집어던졌다.
그 곳에서는 양동이에 퍼득거리는 고기들로 가득했다.
마을의 모든 어른들은 하천에 웅덩이를 파고 또 파고 들어가 양수기로 퍼올렸다. 노오랗게 타들어가던 모내기를 막 한듯한 키작고 야윈 벼들이 생기를 잠시 찾곤하던 그 시절,
그 옆에서 지켜보던 아이는 심부름으로 막걸리나 소주를 사오면 아부지는 갈라진 논 바닥에 물이 들어가듯 타는 목마름을 알콜로 퍼붓는 것을 수없이 보아왔다. 그 시절에 논 밭작물은 가족의 생명줄이었던 것이다.
모내기를 마친 땅이 있는 들, 하늘에서 비가 내리지 않으면 아무런 소용이 없었던 천수답, 또는 물을 필요로 하는 논이 많아 저수지에서 물이 흘러내리는 봇두렁에서 서로 물을 넣기 위해 쌈박질이 수없이 일어나던 그 때,
소년은 이제 열살남짓 했다.
지난 가을에 벼를 베고 보리를 심은 이후부터 비가 거의 내리지 않았다. 12월에서 2월경 그리도 많은 눈으로 덮여 지개를 지고 산에 나무를 하러 갈 수도 없을 만큼 산야를 하얗게 덮던 그 시절에는 나무대신 토끼나 꿩을 잡으로 나가곤 했다.
하지만 그 해는 겨울부터 비가 내리지 않았다. 보리와 밀 이삭이 온통 쭉정이 뿐이었다. 지난 가을에 추수를 했던 나락은 이미 3월부터 바닥을 보였고 쑥과 채소, 산나물, 소나무껍질을 깍고 그 속질을 질겅질겅 씹으며 배를 채웠다.
올해는 그나마 깡보리밥도 배불리 먹을 수 없는 지독한 가뭄이었다. 나물을 가득 넣고 보리쌀 몇 개 들어간 나물죽이라도 배불리 먹었으면......
1970년대 초반경 70% 이상이 농촌이던 대한민국의 풍경이다. 이 상황은 상당지역이 80년대 중반까지 이어졌다. 가뭄과 장마, 병해충 등으로 농촌에 흉년이 이어지면 학교다니기를 포기해야 했다.
그러다 3차경제개발계획이 끝나가는 시기가 되면서 농촌에서 도시와 공장지대로 옮겨가기 시작했고 사람과 짐승이 하던 일을 경운기와 자동차가 대체하며 발전의 탄력이 붙었다.
빨랐다. 너무나 빨라 결산을 예측할 수 없는 시절로 변했다. 산업혁명 후 200여년의 서구선진국의 산업화를 '빨리빨리 문화'는 마구잡이로 흙을 사라지게 만들었고 그 자리에 차갑고 뜨거운 콘크리트와 아스팔트로 뒤덮어 버렸다.
제 아무리 열풍이 불어와도 나뭇그늘과 물가에 있는 미세한 흙의 입자까지 데울 수 없었던 지구의 열기는 시멘트가 한덩어리로 만들어 온도의 변이를 쉽게 읽어버렸다. 포장을 하지 않은 면적이 넓을수록 해가 서산으로 떨어지는 그 순간부터 열기는 죽지 않을 수 없었다.
그렇기에 열풍이 부는 낮에는 에언컨이 없어도 차가운 물을 몇차례 뒤집어 쓰면 더위를 잊을 수 있었다. 밤이 되기를, 어둠의 장막이 밀려오기를 손꼽아 기다리면서 수십번의 물을 뒤집어 쓰는 시간으로 인내를 배웠다.
7, 8월의 작렬하던 태양이 서산을 온통 붉게 물들이며 하루를 마감하는 그 치열했던 더위와의 싸움을 해가 죽으면서 끝을 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