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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도시장의 고귀한 존재, 이석태상회
2500여개 점포와 매일 숫자가 바뀌는 700여명의 노점상 등 전체 3000여명 죽도시장의 독립 상인들 중 국민의 주식인 쌀, 보리, 콩 등 곡식류를 주상품으로 취급하고 있는 장삿꾼은 웬만해서 찾기가 힘든다.
포항권의 산업이 남구 연일읍의 철강3공단이 본격적으로 확장된 1980년대 이후 급속한 인구와 안정적인 수입원을 가진 사람들의 증가로 건어물 등의 수산물이 이 시장의 주력상품으로 떠 오름에 따라 늘어난 횟집과 생선 취급점에 비해 곡물상은 아예 사라지고 있다.
특히 농산물을 포함한 식품과 의류상가는 90년대 후반 대량구매력으로 가격주도권을 가진 할인점이 들어선 이후 급속도로 줄어든데다 값싼 중국산 유입과 원산지 표시가 의무화 된 2000년대 접어들어 이제는 손가락으로 꼽을 지경이다.
한겨울 이 지방에서만 먹거리였던 과메기가 2000년대 중반 지역의 주요 전략상품이자 전국에서 애용자가 늘어난 이후 그나마 몇 남은 죽도시장에 양곡점포마저 대부분 업종을 전환해 버렸다.
농협지정 제9호 양곡판매장 석태상회(2014.11.25골목 풍경)
자전거도 겨우 다니는 좁은 골목길안 상점의 입구에는 석태상회 이석태(72) 사장의 부인 이동명씨(68)씨가 집에서 빼낸 전화선으로 빤간 수화기를 옆 벽에 걸어둔 체 오밀조밀한 통마다 갖가지 색상을 가진 곡식들 옆에서 신문을 뒤적이고 있다.
2000년대 중반부터 전통시장의 현대화 사업이 시작된 이후 수십억원씩 수차례에 걸쳐 골목길에 아치형 아케이트로 지붕을 만들고 바닥을 보기좋게 해 눈비가 와도 끄떡없지만 입구가 어디인지도 찾기 어려운 이 양곡상은 미로같은 좁고 낡은 건물들 사이에 인적이 더문 어둑어둑한 골목 안쪽에 자리하고 있다. <사진5- 동쪽음식점쪽에서 쌀상회골목 풍경><사진6-서쪽번영회건물입구쪽에서 본 풍경> <사진7-석태상회북쪽 골목의 쌀가게쪽 풍경>
양동마을 회재 이언적 선생의 양졸당, 향단, 설천정을 비롯한 네 아들 중 종가(宗家)인 무첨당파 17대손인 동명씨는 물봉골 무첨당 아래서 태어나고 자라 흥해읍 덕성리 울산학성이씨 가(家)의 팔남매 중 둘째에게 시집온 것이다.
군대를 다녀와 조부모에게 인사차 들어간 시골집에서 하루 묵은 이튿날째인 1966년 어느 가을, 시장 안에서 삼촌이 운영하는 쌀 집에 근무하고 있는 것을 이웃한 점포에 양동마을에서 내왕하던 두오빠에 의해 혈통을 잇는 맞이도, 귀여움을 받는 막내도 아닌, 겨우 숟가락 하나 챙겨나온 지차(之次)에게 출가해 6000원짜리 사글세부터 시작했다.
대부분이 입에 풀칠하기도 힘든 보릿고래를 겪던 시기이기에 남의 집도 아닌 적지않은 규모로 미곡상을 운영하는 삼촌의 집에서 적은 돈 이나마 봉급쟁이를 하고있는 일꾼 이석태를 살림살이가 빠듯한 고향마을의 오빠들이 팔남매의 셋째인 스무두살 여동생의 혼처로 판단은 그리 길지 않았던 것이다.
현재 죽도시장의 절반이 당시엔 모래와 뻘밭에 가까운데다 물자 구하기가 하늘의 별따기만큼 어려운 그 시절, 지금 마흔살인 셋째가 태어난 1972년에 죽도시장안 일곱평 단층짜리 기둥조차 부실한 가건물주택을 빚을 보태 130만원에 내 집을 처음 가졌다.
그리고 아이가 넷으로 늘어난 75년에는 단층을 허물고 지은 2층 슬라브건물이 현재에 이르고 있으며 그 당시 벽에 붙인 ‘식탁마다 쌀밥으로 내 몸 튼튼 나라건강’이라는 누런종이에 적힌 정부양곡판매가격표의 표어가 아직도 붙어있다.<사진8-석태상회 1층내부 풍경><사진9-석태상회 외부간판과 진열된 곡식><사진10-7명이 거주한 일곱평짜리 2층방과 주방>
포항시 소유의 죽도시장 부지가 70년대 중반 개인에게 불하를 하면서 건축한 이 상회는 앞이 탁 트인 공간에 청송과 청하, 기계, 신광, 안강, 죽장을 비롯해 멀리 영덕 남정과 강구 바닷가에서 수백명이 계절마다 다른 과일과 채소, 산나물, 해산물을 담은 광주리를 머리에 이고 모인 좌판상으로 늘상 북적거렸으나 1987년 포항시 소유의 100여평 2층짜리 죽도시장상가번영회 건물이 앞을 가로막으며 위기가 시작된다.
9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양곡상은 다른 업종과 마찬가지로 재미가 솔솔했으며 그 이후 내리막 길을 걷기 시작했으나 ‘돈 보다 사람 버는 것’을 신조로 살아와 많은 거래처를 확보하고 있던 석태상회는 걱정거리가 없었다.
더군다나 생선과 과일, 야채 등의 생물(生物)은 하룻밤 사이에 상하는 위험이 있어 사업하기가 여간 힘이 들지만 미곡은 못팔고 남는 재고의 처리마저 걱정이 없어 4남매 자식을 모두 출가시킬 때까지 다른 업종으로 전환은 전혀 생각하지 않았다며 부부는 고백했다.
일곱평짜리 좁은 상점가에서 자란 처조카의 딸을 포함 네 딸과 아들하나, 마흔다섯인 첫째는 대전에서, 둘째는 여상을 졸업해 한국은행에 근무하다 같은 은행의 직원을 만나 지금 서울에서 잘 살고 있으며 처형의 딸은 수석으로 입학한 대학을 마치고 청도읍에서 교편을 잡고 있단다.
또 셋째는 고등학교를 마치고 22대1의 경쟁을 뚫고 학비가 들지않은 간호사관학교를 졸업해 현재 해군소령으로 근무하고 있는데 손자 둘과 손녀 하나를 두고도 하나 더 두겠다고 하는 것을 겨우 말렸다. 이는 대기업에 다니는 사위가 손주들을 학교에 태워주랴 식사를 해결하랴는 등으로 엄마보다 가정에서 더 많은 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에 큰 일을 하기가 힘들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군인인 딸은 몇 년에 겨우 얼굴 한번 볼까말까 하다며 대한민국 대표적인 반촌(班村)출신의 명가(名家) 무첨당파 17대손의 맏딸은 한편으로 서운해 한다.
살아온 날 중에서 가장 아쉬운 것 이라면 지방의 대학을 마치고 부모가까이서 회사에 다니고 있는 아들을 대학에 보내기 위해 두뇌가 명석한 누나들이 고등학교까지만 배우며 희생을 한 것이란다.
“건어물을 팔고 있는 이 시장의 다른 집들은 셋이든 넷이든 아이들을 대학에 보내는데 딸들이 원망을 하지 않더냐?”에 쌀가게 여주인은 “90년대까지 현재의 이 골목 대부분이 양곡상으로 자신들이 커오면서 부모와 수준이 비슷비슷한 이웃을 비교하며 컸으니 지금까지 그런 원망은 없었으며 많이 못배운 자신들이 사회에 진출해 뿌리를 잘 내리고 손주들을 명문대학에 진학시키고 있어 더욱 뿌듯할 것”이라며 자랑스러워 했다.<사진11-2층 방안의 가족사진>
좁고 낡은 죽도시장안 골목의 텔레비전에서나 볼 수 있는 퇴락한 상점에서 반백년을 좁쌀과 지정, 찹쌀, 녹두, 약콩, 양대 등 일반 사람에게는 이름조차도 생소한 서른가지가 넘는 곡식을 비가오나 눈이오나 아침이면 들어내고 저녁이면 거둬 넣느라 얼굴에 주름이 생겼어도, 비록 여식이지만 400여년된 무첨당(無添堂) 마루의 문간에 걸린 좌해금서(左海琴書)를 바라보며 성장한 그 후손은 올곧은 선비처럼 반질반질 윤기가 나는 곡식들이 장난감 같은 서른개 고무통마다 그득한 골목에서 밝고 고운 미소와 낮고 가느다란 목소리로 어제와 같은 오늘처럼 손님을 맞이하고 있다.<사진12-골목입구 곡식옆에 앉은 이동명>
❊ 좌해금서(左海琴書) : 조선시대 고종인 대원군이 임금에 오르기 전에 전국팔도를 유람하다 정승과 관찰사(도지사) 등 우수한 인물 수십명을 배출한 양동마을에 들러 붓이 아닌 대나무를 붓같이 깎아 죽필(竹筆)로 쓴 글로서 ‘영남인(선비)의 멋지고 올곧은 풍류와 우수하고 높은 학문’이라는 뜻.
▲ 50여년째 죽도시장 골목에서 미곡장사를 하고 있는 종가의 맏이 이동명씨
▲죽도시장 골목 약도
▲양동마을 여강이씨의 종가인 무첨당 전경
▲ 관광객이 무첨당의 마루에서 사진촬영하는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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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남뉴스(ynnews.pe.kr/(sea4season@nat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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