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발굽(1),47세 아들!
1980년 8월, 시청앞에서 벗꽃나무 가로수 대릉원 돌담길을 지나 첨성대 동,서편으로는 포도가 주렁주렁 열린 포도밭 그늘에서 전해에 담근 포도주로 관광객과 구경꾼을 유혹하던 주막(酒幕)이 있던 그 경주, 2010년 12월에 다시 서 있다.
당시만 해도 첨성대를 비롯해 계림의 둘레에는 키만큼이나 높은 담이 있었지만 지금은 무릎높이 아래의 철빔으로 둘러쳐진채 “넘지 말라”는 표지판이 있을 뿐 반월성 북쪽에서 대릉원과 안압지, 첨성대 사이에는 고분군과 잔디밭으로 변해있다.
여기에다 논이었던 안압지의 동편으로는 일부를 제외하고는 황룡사지로 개발 중에 있으며 분황사 남측으로 아득히 보이는 남산과 형산강지구대의 울산방향 계곡(溪谷)이 이날따라 겨울의 황혼녘 하늘에 더욱 아름답게 물들다 마침내 어둠이 깔린다.
이제 돌아가야 할 시간이지만, 십칠세 아들과의 약속을 잊은채 마흔일곱의 장년은 당시 추억을 회상하며 헛되이 누렇게 변해버린 잔디밭을 돌며 1300여 년 전 황홀했던 황룡사탑돌이를 하는냥 금당터 주위를 맴돈다.
지개지고 나무하던 촌놈이 그 지개를 버리고 독학으로 공부를 한 후 서울 학교 앞의 독서실을 방으로 삼으며 동가숙서가식(東家宿 西家食)하듯 동분서주한 것에서 시작해 신병과 말년에 두 번씩이나 비무장철책에서 군대생활, 그리고 2만여명의 대학원생을 비롯한 학생이었으나 2000여석도 안되는 도서관 열람석으로 시험기간만 되면 자리다툼이 일어나 푸닥거림을 막기위한 도서관관리위원회에서 3년간의 새벽4시에서 밤11시까지의 봉사활동과, 고학생으로서의 치열한 대학생 시절의 삶은 3500여 종업원의 대기업 마케팅기획실로 입사하면서 고생이 끝나는 듯 했다.
소비자행동론과 마케팅원론, 조사론 등에서 “마케팅실의 PM(Product Manager)은 튀지 않으면 사장(死藏)될 뿐이다”라는 경구가 묵언이 된 부서에서 탁상공론[卓上空論] 하듯한 조사와 분석으로는 양에 차지않은 것이, 그의 영업현장에서 시장과 소비자와의 접촉을 경험하며 마케팅이론을 근간으로 하는 영업은 ‘2년 연속 전국 최고의 실적에다 성장률을 기록했으나 상(賞)은 단 한차례로, 나눠먹기 였음을 파악했고 그제서야 그의 자리로 다시 돌아갈 곳을 기웃거렸다.
88올림픽 이후 한국 소비시장이 90년대 접어들어 초고속 성장기를 거치며 성숙기 후반에 즈음해 할인점 등 신유통의 탄생은 생산자가 주도하던 가격이 판매자에게로 넘어갔으며 기업들마다 생산성제고와 경영혁신을 통해 생존의 몸부림을 쳤고 그의 영업과 마케팅의 경력은 그 자리에 적임자였던 것이다.
그런 후 2년여 완벽주의 성격인 그에게 전국 40여개 사업장 경영혁신의 업무는 안성맞춤이었으나 ‘외국계 공인회계사’자격증을 가진 직위에의 정기 감사(監査)이후에 수십여 년간의 집권당에서 멀리 있던 지역 정권의 탄생에 당쟁(黨爭)의 희생물이 된 동시에
그의 세 살 연장자인 부서장에게는 '종이(韜光養晦)'가 아닌 ‘어린 호랑이[靑出於藍, 囊中之錐] ’로 비쳐 장래 자신의 경쟁 대상으로 내몰렸던 것이다.
그리고 수 년 후 새 천년을 맞이한다는 밀레니엄기를 즈음해 동기부여 요인이 되는 과장 승진이 당쟁(黨爭)의 희생물로 일단 막힌 그에게는 더 이상 그 기업에서의 희망이 없어진 터였고,도광양회(韜光養晦)치 못하고, 맡은 역할마다 실적을 내는 靑出於藍에도 君子之所取者遠,則必有所待; 所就者大,則必有所忍하지 못한 체 2000년 3월에 그는 영일만을 바라보는 그 언덕에 돌아와 주저앉아 있었다.
이씨조선의 건국을 도운 鄭道傳이 그를 경계시하는 태조의 아들들의 힐 눈길에 여행을 떠나 가을 숲속에서 길을 잃은 후 지은 秋雲漠漠四山空 落葉無聲滿地紅 立馬溪橋問歸路 不知身在畵圖中은 그에게 너무도 잘 어울린 詩가 되었고
수십, 수백번의 반복을 그쳐 조선 개국 공신의 글은 그의 의미(意味)가 됐으며 그렇게 그는 10여년을 시들어 가다가 2010년 12월 어두컴컴한 초겨울의 황량한 古蹟에서 꼭 30년 전의 그가 되어 아들과의 약속은 망각한 체 그렇게 분황사 앞의 당간지주[幢竿支柱] 처럼 덩거렇게 서 있었다.
그러는 사이에 신경주역사의 건설로 멀지 않아 사라질, 신라의 왕궁과 연못사이 정원(庭園)에 일제(日際)가 건설한 ‘동해남부선’ 철 길을 낸 곳으로 부산발 포항행 비둘기호가 지나간다.
그와 그 아들의 나이 열일곱,
그러다가 후딱, 또 다른 30년이 지난 그 곳에는 1400여년전 신라 선덕여왕때 지어진 황룡사9층목탑과 통일신라 왕궁의 의리의리한 풍경이 다시 살아난 속에서 47의 아들과 77세가 된 그가 그 자리에서 2010년 12월 8일을 기억하려 할 것이다.
벼와 보리를 재배하며 1차산업 생산지던 고도(古都) 경주 1980년의 공간은 3차산업인 관광서비스 단지로 생산요소가 바뀐 2040년, 1300여년전 통일신라의 수도로 부활한 공간에서 그렇게 ...... 2014.10.6 서울 남산에서 306보충대입대 전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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