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력의 저주
권력의 독선·남용·위선은
인간 본성의 필연적 한계
미국 건국의 아버지들처럼 여당은 그 본성 고찰해야
미국 건국의 아버지 중 한 명이자 미국 헌법의 주 저자인 제임스 매디슨은 이런 말을 했다. "정부란 인간 본성에 대한 가장 큰 고찰이 아니고 달리 무엇이겠는가?" 그러면서 그는 "정부 구조는 견제와 균형의 원리를 충족해야만 한다"고 썼다.
그렇다면 인간 본성이 도대체 어떻기에 권력 간에 견제와 균형이 필요한 걸까. 그건 바로 우리 본성에 내재한 악덕 때문이다. 선량한 사람도 권력을 잡으면 악덕의 노예가 되곤 한다.
미국 건국의 아버지들은 이를 잘 알았다. 스티븐 핑커는 명저 `우리 본성의 선한 천사`에서 이렇게 썼다. "미국 건국의 아버지들은 인간 본성의 한계를 의식적으로 고찰했다. 인간 본성의 악덕들에 잘 대응하도록 민주주의를 설계해야만 한다고 보았다. 특히 지도자의 권력 남용 유혹에 대비해야 했다." 이를 위해 미국 건국의 아버지들은 입법·사법·행정부가 서로를 견제하도록 했다. 현대 심리학은 미국 건국의 아버지들이 옳았음을 입증하고 있다. 이언 로버트슨 트리니티칼리지 교수에 따르면 권력은 쾌락 호르몬이라고 하는 도파민 분비를 촉발한다. 그 결과 권력에 취하면 우리 뇌는 앞만 보고 달리는 경주마와 같은 상태가 된다. 권력자 역시 자신이 원하는 바, 목표만 본다. 주변의 고통에 무감각해진다. 그 목표로 돌진하는 자신의 옳음을 확신한다. 그 옳음을 느낄 때마다 뇌는 도파민의 작용으로 쾌락을 느낀다. 그 옳음을 부인당하는 건 쾌락의 기회를 박탈당하는 거다. 권력자는 이를 못 참는다. 반대자를 내친다. 권력은 독선과 남용으로 빠져든다.
위선은 권력의 속성이다. 심리학자 데이나 카니의 역할극 실험은 이를 입증한다. 잠깐 권력자 역할을 맡은 사람들은 남의 돈을 자기 돈이라고 말하는 거짓말을 능숙하게 해냈다. 다른 많은 실험에서도 인간은 권력감을 느끼면 자신은 지키지도 않는 엄격한 도덕 기준을 남들에게 요구한다는 게 확인됐다. 이처럼 권력은 인간 본성의 숨은 악덕을 드러낸다. `권력의 저주`다.
총선에서 압승한 여당에 최근 권력의 저주가 드리우고 있다는 신호가 보인다. 우선 금태섭 전 의원에 대한 징계다. 그는 지난 국회에서 당론과 다른 투표를 했다는 이유로 징계를 받았다. 국회의원의 소신과 양심보다 당론이 더 중요하다는 뜻인지 의문이다. 이는 반대자를 용납하지 않겠다는 신호다.
여당에서 상임위원장 독식 얘기가 나오는 것도 우려되는 신호다. 1990년 3당 합당으로 민자당이 의석수의 72.9%를 차지했을 때에도 상임위원장의 4분의 1은 평화민주당이 가져갔다. 그런데도 지금 여당은 `상임위원장 독식`을 말한다. 이는 여당이 견제받기 싫은 권력이 되고 싶어한다는 신호 같다. 견제가 필요 없다고 할 정도로 자신이 옳음을 확신한다는 신호이기도 하다.
로버트슨 교수에 따르면 권력은 마약만큼 중독적이다. 도파민에 젖은 뇌는 그 쾌감을 잊지 못한다.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최강 유혹자 `세이렌`의 노랫소리만큼이나 유혹적이다. 내적 성찰과 통제만으로는 그 유혹을 못 이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신화 속 오디세우스는 세이렌의 바다를 지날 때 돛대에 자기 몸을 꽁꽁 묶게 했다. 그의 마음은 세이렌의 유혹에 무너졌지만, 몸은 돛대에 묶여 있기에 목숨을 구했다. 권력자도 마찬가지다. 돛대에 자기 몸을 묶는 것과 같은 외적 통제 장치를 만들어야 한다. 권력의 유혹에 마음이 무너져도 자신을 권력 남용에 빠지지 않도록 견제할 장치를 만들라는 뜻이다.
과거 여당이 법안 통과의 길목인 법제사법위원장을 야당에 맡긴 것도 그 같은 지혜를 발휘한 사례가 아닐까 싶다. 이 덕분에 자기 뜻대로 법안을 통과시키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아도 무작정 행동으로 옮길 수는 없었다.
인류 역사에 견제받지 않는 권력이 승리한 사례는 없다. 자신을 견제할 반대자를 두는 것, 그게 여당이 진정 승리하는 길이다.
 [김인수 매경 오피니언부장]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