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희의 기업과 동반성장 경제학
K-바이오, 세계 바이오 산업의 미래를 걸머지다
성장 위해 분배 소홀했다는
`박정희 시대` 평가는 선입견
좌파정부보다 분배 수준 높아
기업·시장·정부 3자협업으로
기업주도 성장의 正道 걸어야
현재 국내에서 '정사(正史)'처럼 받아들여지는 한국 경제사는 다음과 같이 기술된다.
"박정희 시대의 정부 주도 '압축성장'으로 한국은 경제성장에는 성공했지만 소득 양극화, 대·중소기업 양극화 및 부채 의존이라는 구조적 문제를 안게 됐다. 이 구조적 문제가 터진 것이 1997년 금융위기다. 그 후 실질적 '민주정부'들이 들어서면서 구조개혁을 통해 '동반성장'으로 전환했다. 그러나 재벌 체제 등 개혁에 대한 '저항'으로 인해 성과가 크게 나타나지 않았다. 따라서 '경제민주화'는 한국 경제 발전을 위해 계속 필요한 과제다."
이러한 '정사'의 밑바닥에는 고속성장과 분배 간의 이분법이 깔려 있다. 성장을 빨리하려면 분배를 소홀히 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특히 경제발전 초기에는 노동집약적 성장을 해야 했는데, 임금 상승을 억제해야만 수출 경쟁력이 생기기 때문에 정부가 노동자를 탄압했다는 선입견으로 이어진다.
'정사'가 진실과 다름을 가장 적극적으로 설파하고 한국적 경제학을 만든 사람이 좌승희 박정희재단 이사장이다. 그는 '박정희, 동반성장의 경제학' 등의 저서를 통해 박정희 시대야말로 명실공히 동반성장을 달성한 때라며 이를 실증적으로 밝히고 이론을 제시했다.
실증은 수치를 조금만 객관적으로 들여다보면 이미 '빼박'의 사실이다. 한국은 대만과 함께 고도 성장과 '괜찮은 분배'를 동시에 달성한 유이(唯二)한 개발도상국이었다. 분배가 나빠진 것은 어느 지표를 살펴봐도 동반성장으로 전환을 추구했다는 1997년 이후다. 분배를 중시한다는 좌파적 정부 때에 우파적 정부 때보다 분배가 나빠지는 역설적 현상도 나타났다.
근로자 임금도 마찬가지다. 분신자살로 '노동 착취'의 화신이 된 전태일 씨의 경우를 보자. 당시 평화시장 근로자들의 삶이 열악했던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전태일의 임금은 뜀박질했다. 1964년 '시다'로 시작할 때의 월급은 1500원이었는데, 1967년 재단사가 되면서 1만5000원으로 열 배 뛰었다. 1970년에는 2만3000원으로 다시 53% 상승했다. 지금의 잣대로 보면 '열악'이나 '착취'라는 말을 붙일 수 있을지 모르지만, 가난한 나라 근로자의 삶은 어디나 마찬가지였다. 한국은 대신 '가난으로부터의 탈출'을 빨리 이루었고, 그것이 전태일의 임금에 반영됐다.
좌승희 이사장은 박정희 시대에 동반성장이 가능하게 된 이유를 '기업부국 패러다임' 혹은 '삼위일체 차별화 경제성장론'이라고 요약한다. 정부 주도가 아니라 '기업-시장-정부'의 3자가 협업체제를 구축했기 때문이고, 그 핵심에 기업이 있다는 것이다. 정부는 시장의 신상필벌(信賞必罰) 기능을 믿고 수출시장에서 경쟁력 있는 기업을 육성했다. 이에 따라 경쟁력 없는 기업은 퇴출되고 경쟁력 있는 기존 기업, 신흥 기업들이 커나갔다. 기업은 확장하고 고도화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근로자를 뽑고 교육시켰다. 이 과정에서 고용이 늘고 임금이 지속적으로 상승했다.
박정희 시대의 동반성장론은 저성장과 노령화에 부딪힌 한국 경제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그동안 정부는 산술적 평등을 맞추려고 경쟁에 뒤떨어지는 기업까지 지원을 대폭 늘려왔다. 반면 경쟁력 있는 기업은 규모가 크다는 이유만으로 각종 규제 속에 집어넣었다. 결과는 시장의 '차별화' 기능 약화와 기업의 '정치화'다. 정부 주도 성장을 만들어내려다 보니 성장과 분배가 동시에 망가졌다.
성장의 정도(正道)는 기업 주도 성장이다. 기업 성장과 창업을 통해 경제가 확장하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고용이 늘고 임금이 올라 분배도 개선되도록 유도하는 것이 정부의 역할이다. 이번 대선에서 어느 정부가 들어서건 지금 우리가 처한 여건과 발전 단계에 맞춰 기업과 동반성장의 고차방정식을 풀어내는 것은 필수 과제다.
[신장섭 싱가포르국립대 교수]
K-바이오, 세계 바이오 산업의 미래를 걸머지다
K-바이오가 글로벌 보건 산업의 미래를 육성할 막중한 책임을 부여받았다. 지난달 23일, 세계보건기구(WHO)가 우리나라를 '글로벌 바이오 인력 양성 허브'로 단독 지정하면서다. WHO는 코로나19 팬데믹을 계기로 드러난 국가 간 백신 불평등 문제를 해결하고자 노력해왔다. 전문 인력을 양성해 중·저소득국의 백신 역량을 구축하는 것이 중요했는데, 그 선구적 역할이 대한민국에 맡겨진 것이다.
이번 성과의 배경에는 정부의 강한 의지와 기업들의 끝없는 도전이 있었다. 정부는 '세계 5대 백신 강국' '바이오 선도 국가'를 목표로 한미 간 글로벌 백신 파트너십을 비롯해 여러 국가, 기구들과 협력을 강화해왔다. 바이오산업 인재 양성과 재정 투자, 지역별 바이오 클러스터 협력 체계 구축 등에도 힘을 기울였다. 바이오 연구개발(R&D)과 시설 투자 등에 대한 지원도 빼놓을 수 없다. 유치전이 본격화된 후로는 국회와 외교부가 한마음으로 움직였다. 국제기구의 관심과 지지를 지속적으로 요청했고 주요 외교 행사 때마다 한국의 허브 선정을 위한 외교적 노력을 펼쳤다.
한국 바이오 기업들은 2013년 항체 바이오시밀러를 개발해 세계 시장을 개척했다. 그리고 세계 2위의 바이오 의약품 생산 능력을 자랑하는 수준에 올라섰다. 팬데믹 상황에선 미국, 유럽연합(EU) 등 선진국에서 허가된 5종의 코로나19 백신 중 3종을 국내에서 독자적으로 위탁생산해 전 세계에 공급했다. SK바이오사이언스가 자체 개발한 코로나19 백신은 빌&멀린다게이츠재단, CEPI 등 국제기구들이 후원했고, IPD, IVI 등 해외 연구기관과 글로벌 기업들이 지원하고 협력했다. 그사이 SK바이오사이언스의 코로나19 백신 생산시설도 '일류'로 성장했다. 글로벌 시장에서 가장 높은 수준의 의약품 제조 및 품질 관리 기준인 EU-GMP 인증을 확보하며 역량을 입증했다.
끝없는 터널 같았던 코로나19 팬데믹 상황에도 대한민국과 K-바이오는 꿋꿋하게 길을 개척해왔다. 그리고 다음을 준비하는 시점에 세계 바이오 산업의 미래를 육성할 선구자로 위촉됐다. 앞으로도 인류는 생존을 위협할 질병과 끝없는 싸움을 계속할 것이다. 인류의 생존이라는 대명제 아래 주어진 사명을 수행하고 다음을 준비하는 것, 그래서 지금보다 좀 더 나은 모습으로 대응할 인프라를 구축하는 것이 우리에게 부여된 역할이다.
WHO의 주문처럼, 한국은 세계의 중심에서 보건 안전을 위한 리더십을 발휘해야 한다. 하지만 그 지점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주어진 기회를 더 큰 성장의 계기로 활용하는 건 K-바이오에 주어진 또 다른 과제다.
WHO 인력 양성 허브 지정은 우리 바이오산업이 세계의 중심으로 도약하는 데 있어 중요한 모멘텀이 될 것이다. WHO 등 국제기구들과 맺게 될 탄탄한 협력 관계는 한국 바이오의 위상을 더욱 높일 것으로 기대된다. 글로벌 기업과 한국 간 생산설비 및 R&D 투자 같은 기술 협력도 가속화될 수 있다. 특히 중·저소득국에 K-바이오의 우수성이 심어지면서 산업 저변의 확장과 유형의 성장을 가져올 것이다. 국내 바이오 기업의 국제적인 신뢰도가 높아질 수 있음은 물론이다.
대한민국과 K-바이오가 꿈꾸는 '세계 5대 백신 강국' '바이오 선도 국가'는 이 같은 도약의 기회를 절실하게 활용할 때 완성될 수 있다. 우리가 수행해야 할 인류를 위한 선구적 역할, 그리고 우리가 실천해야 할 세계를 향한 도전은 '따로'가 아닌 '같이'다. [안재용 SK바이오사이언스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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