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스크의 '베팅'과 기업의 '컬러'
트럼프에 집중 투자한 머스크
국가 운영도 '효율화'할지 주목
대외 접촉 줄인 韓 기업인과 달리
자신만의 고집·철학을 현실화해
독자적 색깔은 '기업의 정수'
세계 제패 꿈과 배짱 지녀야
머스크의 '베팅'과 기업의 '컬러'도널드 트럼프를 제외하면 지난 미국 대선에서 가장 눈에 띄는 인물은 단연 일론 머스크다. 그는 그야말로 물과 심 모든 면에서 가장 헌신적인 트럼프 지지자가 됐다. 트럼프 당선을 위해 설립한 정치 자금 모금 단체에서 진행한 표현의 자유와 총기 소지 자유 옹호 청원에 서명한 유권자 중 한 명을 매일 추첨해 100만달러를 지급하겠다고 공언해 흥행과 지지를 끌어냈다. 미국 선거판에서 기업인들이 지지하는 후보를 위해 거액의 후원금을 내는 경우는 흔하지만, 머스크처럼 지원 유세에 직접 동행하며 연단 위를 뛰어다니는 건 흔치 않다.
대선 유세 기간 우리 돈 1800억원이 넘는 거액을 썼지만, 트럼프의 대선 승리로 테슬라 주가가 대선 이후 4거래일 만에 39%나 급등해 머스크는 앉은 자리에서 98조원 넘는 돈을 벌었다. 돈도 돈이지만 2기 트럼프 행정부에서 새로이 출범할 정부효율부의 수장으로 내정된 머스크는 향후 4년간 현실정치에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하게 됐다. 테슬라와 스페이스X 경영에서 보여준 고도의 효율성을 정부 운영에도 접목할 것이다. 사업의 효율화가 국가 운영의 효율화로 전환할 수 있을지에 세계인의 눈과 귀가 집중되고 있다.
과거 정주영 현대그룹 회장이 대통령이 되겠다고 나섰다가 김영삼 정부로부터 집요한 핍박을 받았고 김석원 쌍용그룹 회장이 현실정치에 발을 들였다가 회사 전체가 위험에 빠지기도 했던 터라 한국 대기업 총수들은 언론, 정치권, 대중과의 접촉면을 가급적 줄이는 것이 암묵적인 룰이다. 그에 비하면 머스크의 행보는 기행에 가깝다고 볼 수도 있다.
그러나 머스크의 움직임을 기행, 파격이라고만 치부하기엔 설명이 부족하다. 화성 이주와 같은 일견 허황돼 보이는 이야기를 하는 듯하지만 그런 발상은 이미 대학 시절의 꿈이었고 강한 의지와 실행으로 일생의 몽상을 차근차근 이뤄가고 있다. 그는 나름의 결단력과 철학, 고집을 바탕으로 회사를 일으켰고 세계 최고 기업으로 성장시켰다. 오히려 우리 옆에는 소소한 몽상가조차 눈 씻고 찾아볼 수 없는 현실이 안타깝다.
그의 견고한 가치관과 철학은 테슬라, 스페이스X의 기업 문화에도 뚜렷이 드러난다. 대부분 빅테크 기업이 인재들이 떠나갈까 두려워 더 좋은 근무 환경, 더 높은 급여를 제시할 때 머스크는 재택근무를 과감히 비판했고 사무실에 모여 동료들과 치열하게 일할 것을 요구했다.
구글, 마이크로소프트 같은 회사들이 화려한 사내 복지로 이목을 끌어도 머스크는 굴하지 않고 강한 노동 강도를 주문했다. 그가 재택근무를 비판하는 건 생산성 저하라는 경제적 이유뿐만 아니라 재택근무가 도덕적이지 않은 위선적 행태라고 보기 때문이다. 그는 정보기술(IT) 노동자는 집에서 일해도 된다고 생각하는 것은 일종의 도덕적 우월의식이라며 테슬라 임직원에게 주 40시간 사무실에 나와서 일하지 않으려면 회사를 떠나라고 일갈했다. 머스크가 뚜렷한 비전과 잣대로 기업을 경영하기에 가능한 것이다.
한국 기업도 머스크처럼 자기만의 색깔, 독창적인 철학을 지켜야 한다. 모든 기업은 업종과 사람과 환경에 따라 저마다 경영 철학이 다를 수밖에 없고 달라야 한다. 그러나 우리는 잘나가는 기업이 하는 것 중 보기에 좋아 보이는 것만 수박 겉핥기식으로 추종하는 경향이 강하다. 소위 벤치마킹이라고 하며 유행을 따라 한다고 근본적인 경쟁력을 복제할 수 있을까? 회사에서 밥을 세 끼 준다거나 사무실에 반려동물을 데려갈 수 있다는 정도의 곁가지보다 중요한 점은 그 회사가 추구하는 가치와 그 가치를 추구하기 위해 필요한 인재상을 정립하는 것이다.
반도체업계의 압도적 1위로 도약한 TSMC의 연구개발팀은 주 7일, 24시간 가동된다. 반도체업의 특성상 치열한 연구개발 없이는 경쟁에서 살아남을 수 없기 때문이다. TSMC는 이런 업의 특성을 이해하고 기꺼이 주 7일을 일할 준비가 되지 않은 사람은 회사가 원하는 인재가 아니라고 당당히 밝힌다. 우리 기업에 가장 필요한 것은 세계를 제패하겠다는 꿈이다. 만약 그런 꿈이 없다면 우리는 우리만의 길을 간다는 배짱이라도 있어야 한다. 그게 기업의 색깔이고 정체성이다
이근면 前 인사혁신처장
PBR이 낮으면 사업을 접어야 할까?
'도마'에 오른 저PBR 주식
경영진 교체·청산 주장 적지 않아
경제·사회적 비용 큰 복합 문제
단순한 접근으론 해결 불가능
기업환경 개선하고 투자 늘려
신뢰 회복하는 게 바른 '해법'
PBR이 낮으면 사업을 접어야 할까? 주가순자산비율(PBR)은 기업의 시장가치와 장부가치를 비교하는 중요한 지표다. 주가를 주당 순자산가치(Book Value per Share)로 나눈 값으로, 기업의 저평가 또는 고평가 여부를 판단하는 척도로 활용된다. PBR이 1이면 시장가치와 장부가치가 동일하다는 의미이고, 1보다 낮으면 기업이 시장에서 장부가치 이하로 평가되고 있음을 나타낸다.
일각에서는 PBR이 낮은 기업은 투자자 신뢰를 잃었거나 경영에 문제가 있으므로 청산하거나 경영진 교체가 필요하다는 주장을 제기한다. 유력 야당 정치인은 “저PBR주는 적대적 인수합병(M&A)을 당해야 한다”고도 말했다. 그러나 이는 지나치게 단순화된 접근으로, 현실적인 문제와 경제적·사회적 비용을 간과하고 있다.
PBR이 낮은 이유는 다양하다. 수익성이 낮은 기업은 자기자본이익률(ROE)이 떨어져 시장에서 매력을 잃고, 부채 비율이 높거나 자산 가치가 하락하면 투자자들은 안정성에 의구심을 갖는다. 또한 경영진의 비효율적인 의사결정, 지배구조의 불투명성, 산업 구조적 문제, 글로벌 경제 환경 악화 등도 주요 요인으로 작용한다.
예를 들어 2022년까지 PBR이 1을 크게 웃돈 한화는 최근 낮은 PBR로 비판받고 있다. 그러나 이는 단순한 경영 문제라기보다 지주회사로서의 구조적 특성과 시장 환경의 영향을 받은 결과다. 일본에서도 PBR이 1 미만인 기업이 전체의 44%에 이를 만큼 낮은 PBR은 특정 국가에 국한되지 않는 현상이다.
PBR이 낮다는 이유로 기업을 청산해야 한다는 주장은 단순해 보이지만, 현실적으로는 많은 문제점을 가지고 있다. PBR이 낮다고 해서 반드시 청산가치가 장부가치보다 높거나 기업 자산이 제대로 활용되지 않는다는 결론을 내릴 수 없다. 자산 매각 과정에서 발생하는 비용과 부채 상환, 세금 등으로 실제 청산가치는 장부가치보다 낮아질 가능성이 크다. 또한 청산은 단기적 이익을 얻는 데는 효과적일 수 있지만, 장기적인 가치 창출 기회를 잃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여기에 기업 청산은 종업원 실직, 협력 업체와의 관계 악화, 지역 경제 침체 등 사회적 비용을 발생시키며 단순히 재무적 판단만으로 결정할 수 없는 복잡한 문제를 동반한다.
마찬가지로 PBR이 낮은 기업은 경영권을 내놓아야 한다는 주장도 문제가 많다. 낮은 PBR이 경영진의 실패를 의미한다고 단정할 수 없다. 시장의 단기적 반응이나 외부 요인에 의해 저평가된 경우도 많기 때문이다. 더불어 경영권 교체가 항상 기업가치를 높이는 결과를 보장하지 않는다. 새로운 경영진이 기존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거나 기업의 핵심 비즈니스를 이해하지 못해 더 큰 혼란을 초래할 위험도 있다. 그리고 경영권 교체는 조직 내 불안을 야기하고, 핵심 인재의 유출 및 조직 안정성 저하로 이어질 수 있다. 나아가 경영권을 강제로 교체하는 것은 단기적 이익을 추구하는 행동주의 투자자들에게 악용될 가능성이 있으며, 기업의 장기적 발전에 해가 될 수 있다.
낮은 PBR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근본적인 접근이 필요하다. 무엇보다 기업은 ROE를 높이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 ROE는 순이익을 자기자본으로 나눈 비율로, 기업의 수익성과 자본 효율성을 보여주는 핵심 지표다. 낮은 PBR의 가장 큰 원인은 ROE의 저하에 있다.
ROE가 낮다는 것은 순이익 대비 자기자본이 지나치게 많다는 의미다. 그런데 왜 많은 기업이 과도한 자기자본을 보유하고 있을까? 이는 불확실한 경제 환경 속에서 투자 결정을 내리지 못한 채 미래를 대비하기 위해 자본을 쌓아두는 경향 때문이다. 이런 전략은 단기적으로 안전해 보일 수 있으나, 자기자본이 지나치게 많아지면 자본 효율성이 떨어지고 ROE가 낮아지는 역효과를 낳는다.
기업 환경을 개선해 보다 적극적으로 투자할 수 있는 여건을 조성한다면 불필요하게 자본을 쌓아두는 관행은 자연스럽게 사라질 것이다. 투자 활성화는 기업의 수익성을 높이고, ROE를 개선하며, 궁극적으로 PBR도 긍정적으로 변화시킬 수 있다. 안정적인 환경에서 기업이 성장과 투자를 통해 시장 신뢰를 회복하는 것이 PBR 개선의 핵심이다.
신현한 연세대 경영대학 교수·前 한국증권학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