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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간 싱크탱크가 필요하다
일반적으로 권력이란 단어의 의미는 그다지 호의적이지 않다. 그렇지만 그런 가운데서도 나쁘지 않은 권력이 있다면 지식권력이 아닌가 싶다. 세속적인 세상에 대해, 그리고 서슬 퍼런 정치권력에 대해 대쪽같이 바른말을 해줄 수 있는 지식권력이야말로 지금 우리에게 가장 아쉬운 존재일지 모른다. 지금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정치, 경제, 사회적 문제의 근원에는 지식권력의 붕괴라는 위기가 자리하고 있다. 지식인은 이용의 대상이지 더 이상 경청의 대상이 아니다.
경제부흥을 이끌었던 박정희 전 대통령은 군인 출신이었지만 적어도 집권 초기에는 지식과 기술의 중요성에 대해 정확한 이해가 있었던 것 같다. 그가 KDI, 즉 한국개발연구원을 창설했던 것도 경제발전을 위한 지식의 필요성을 인지했기 때문이다.
당시의 기록을 보면 해외에서 유치되어온 학자들에게는 공무원이나 대학 교수들에 비해 월등하게 높은 급여를 보장하고 주택을 공급하며 자동차와 기사를 제공하는 등 특단의 예우를 했다. 경제개발 과정에서 이들의 지식 전문성이 워낙 중요한 역할을 했기 때문에 대통령도 고위 공무원들도 이들의 의견을 경청했다. 유교적 전통의 영향으로 선비들의 말을 존중하고 들어주는 사회적 분위기가 있었던 것도 중요한 역할을 했을 것이다.
그러나 지식인들의 객관적이고 곧은 이야기를 끝까지 들어줄 수 있는 정치인이나 공무원은 아마도 없는 것 같다. 경제발전이 본격화되고 고등교육의 혜택이 보편화되면서 지식인들의 직언은 점점 더 그 빛을 잃어 갔다. 박정희 전 대통령도 KDI나 재야의 교수들이 성장 중심의 경제정책에 반대하자 지식인과의 관계를 멀리했다. 그리고 자신의 주장을 정당화해줄 연구소를 새로 만들고 지식인을 포섭했다. 어용학자라는 단어가 등장한 것도 이때였다.
그 후 국가의 사회에 대한 지배력이 강한 전통 속에서 지식은 점점 정치권력에 종속되어 갔다. 대학이 지속적으로 일정 규모의 연구 프로젝트를 수행하기 위해서는 연구개발(R&D) 예산을 배정하는 정부와 부드러운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불가피해졌다.
국가의 주요정책을 담당하는 부처로부터 용역을 발주받은 학자들은 대놓고 정부에 싫은 소리 하기가 어려워졌다. 우리나라의 대형 싱크탱크 대부분이 정부 산하기관이라는 사실은 이들이 객관적인 지식을 산출하기 어렵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해당 집권 정부의 이념이나 정책에 부응하는 결과물을 산출할 수밖에 없다는 한계를 가지고 있다.
미국은 전 세계 주요 싱크탱크의 약 3분의 1에 해당하는, 약 1800개를 보유하고 있는데 주목할 것은 이들이 대부분 민간 주도의 전문 연구기관이라는 점이다. 그러니까 미국이 작은 정부가 될 수 있는 이유는 바로 이러한 싱크탱크의 존재와 관련이 있다. 민간 싱크탱크에서 만들어낸 다양한 지식이 정부에 공급되는 것이다. 정부가 필요한 지식을 자급자족하려 하고 그래서 결국 큰 정부로 귀결되고 마는 우리와는 다른 양상을 보여준다. 우리도 이제는 민간 스스로 그러한 노력을 할 필요가 있다.
미국에서 록펠러, 카네기, 밴더빌트가 자신의 부를 지식사회를 위해 기부했던 전통은 빌 게이츠나 마크 저커버그 등에 의해서 계승되려 하고 있다. 민간이 다양한 지식을 만들어 내지 못하면 그래서 정부를 이끌어 가지 못하면 창의적인 사회나 시장은 만들어질 수 없다. 큰 국가에 모든 것을 의존하는 굴종적 자세에서 탈피해야 한다.
우리가 걱정하는 것은 지식권력의 붕괴가 지식인의 실업에 봉착해서만이 아니다. 지식사회가 죽으면 나라가 망한다. 결정장애의 위기에 빠진 이 나라에 정직하고 합리적인 이야기를 해줄 지식집단이 필요하다.
시민사회의 핵심은 사회운동세력만이 아니다. 정확한 지식을 만들어 내는 싱크탱크야말로 우리가 필요로 하는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시민사회세력이다.
[이연호 연세대 동서문제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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