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ㆍ작성일	2016-02-12 02:20

ㆍ추천: 0

무엇을 내려놓아야 할까
불교에는 `방하착(放下着)`이란 말이 있다.

법정 스님 덕에 일반인에게도 많이 알려진 무소유와 일맥상통하는 말이기도 한데 `마음을 내려두다` `집착을 놓다`는 말이다.

우리는 종종 "저 사람은 왜 권력을 놓지 못하고 추하게 저러느냐" "돈에 집착해서 저리 살고 싶을까?" "그 사람 좀 잊고 놓아주렴" "모든 걸 내려두고 떠나겠습니다"라고 쉽게들 이야기한다. 돈과 권력, 인간관계 등에 집착해 괴로운 현대인들에겐 특히 이 방하착의 개념이 무엇보다도 필요한 치유제가 될 것임은 틀림없으나 정작 말이 쉽지 붙들어 잡는 것보다 훨씬 어려운 일이다.

우리는 무엇인가를 내 소유로 하고자 할 때는 무진장 애를 쓰며 온갖 노력을 다한다. 그리하여 일단 얻은 것은 돈이든 사람이든 물건이든 시간이 지날수록 애착이 붙어 더더욱 내려두기가 힘든 게 사람의 심리다.

그런데 사람을 놓아버릴 때는 `나와는 더 이상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하찮은 물건만도 못하게 순식간에 놔버리는 경우가 종종 있다.

내가 무지 갖고 싶은 자동차를 갖게 됐다면 비록 차가 좀 고장이 나더라도 더욱 애지중지하며 응당 감내한다. 그런데 희한하게도 사람은 욕심이 나서 일단 얻어버리고 나면 나를 힘들게 한다는 이유로, 나에게 더 이상 득이 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너무나 쉽게 놓아버린다. 어찌보면 자동차만 한 감내도 하지 않으려는 것이다. 자동차 수리비로 100만원을 쓰는 건 속상하지만 당연한 지불이라 생각하고, 누군가를 위해 100만원을 쓰는 건 상대방에게 무지 큰 선심과 큰돈을 썼다 생각하며 나도 모르게 무의식에는 보상에 대한 기대가 자리 잡게 된다.

사실 사람은 얻기도 힘들고 놓기도 힘들어야 한다. 그러나 사람들은 자동차를 얻고 유지하고자 하는 노력만큼도 사람에게 정성과 노력을 기울이지 않는다. 내가 필요하면 취하고, 필요 없으면 언제 그랬느냐는 듯 금세 놓아버린다. 사람은 시장판에 널어놓고 사고파는 물건이 아니다. 그런데 요새는 사람을 취하고 버리는 일이 무슨 상거래처럼 너무나 쉽게 어제의 원수가 오늘의 동지가 되고는 한다.

매우 오랜 경력을 지닌 원로 정치인과의 담소 중 정치판에는 배신이라는 개념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 거 같다는 말을 들었다. 긴 세월의 경험과 구력에서 나온 이야기일 것이다. 한편으로는 고개가 끄덕여지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서글픈 소리다.

그러나 돌이켜 생각해보면 우리 삶에서 중요한 건 배신이다 아니다, 놓아버린다 만다가 아니라 무엇을 어떻게 제대로 방하착하느냐가 내 인생의 품격과 건강함 그리고 행복을 동시에 결정짓는다. 한때는 과감하게 모두 놓아버리고 냉정하고 쿨한 것이 멋지다 생각한 적도 있다.

돌이켜보면 내 마음에서는 진정 받아들이지도 못하면서 쿨한 척, 아무렇지도 않은 척 괜한 허세를 부린 듯하다. 진정한 방하착은 내려두되 인정하고 품고 가는 것이요, 진정한 무소유는 집착하는 바 없이 보듬고 포용하는 것이다.

얼마 전 미국 최고액의 로또복권 당첨자가 딸아이의 학자금대출만 갚고 모두 기부했다는 정말 멋진 뉴스를 보았다. 집착 없이 과감하게 내려놓았으나 모두를 얻고 품은 진정한 방하착의 모습을 보았으며, 과연 나는 저럴 수 있을까 다시 한번 생각했다.

또한 그런 훈훈함과 품격 있음이 우리나라의 여전히 복닥거리고 분주한 정치권과 재벌가에서 일어나는 뉴스이기를 바라는 건 비단 나만이 아닐 것이다.

열받는 화기(火氣)도 냉정한 냉기(冷氣)도 아닌 따끈한 온기(溫氣)가 그리운 세상이다. 흘러간다고 해서 무작정 가는 것이 아니라 갈 길을 제대로 가야만 흘러가는 것이다.
무책임함과 포기가 놓아버림이 아니요, 냉정함만이 무소유가 아닌 도리를 알면 온전한 삶을 입으로 떠들지 않아도 나의 삶 전체로 살게 되는 날이 오지 않을까.

[박지숙 카루나마인드힐링 연구소장]

여수·순천·광양의 도시연합 실험

이정록 전남대 지리학과 교수

전남 여수·순천·광양을 하나의 도시 연합체로 만들자는 움직임이 시작됐다. 주체는 지역 상공인들이다. 작년부터 여수상공회의소가 추동하고 순천과 광양상공회의소가 동참하고 있다. 이를 위해 '광양만권 도시 연합을 위한 심포지엄'도 열었다. 지난달 여수·순천·광양상공회의소가 공동 주최한 강연에서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가 "광양만권 통합을 위해 도움을 요청하면 적극 나서겠다"고 한 것도 이런 움직임의 연장선이다.

3개 도시를 하나로 묶을 이유는 많다. 3개 도시가 하나의 도시권·경제권·생활권을 유지하기 때문이다. 역삼각형 모양의 간선 도로를 따라 시가지는 거의 연결됐다. 승용차로 순천과 광양은 15분, 순천과 여수는 30분, 광양과 여수는 30분 거리다. 여수의 여수국가산단과 율촌산단, 순천의 해룡산단, 광양의 초남산단·광양항 컨테이너부두·광양제철소 등이 광양만에 면해 'C자' 형태로 연접해 있다. 3개 도시 간 통근·통학 인구와 유동 인구도 많다. 여수와 광양 사람들은 주로 순천에서 쇼핑을 한다.

3개 도시를 합치면 도시 경쟁력은 대단해진다. 면적은 1880㎢로 서울의 3배다. 인구는 72만여명으로 전주보다 많다. 지역내총생산(2013년)은 3조5000억원으로 경남 창원(3조6000억원)과 비슷하다. 산업단지, 여수공항, 광양컨테이너부두, 광양만권경제자유구역 등 산업 인프라도 갖추었다. 여수의 석유화학과 해양 관광, 광양의 철강과 항만, 순천의 도시 서비스로 도시별 역할 분담도 가능하다. 2012여수세계박람회와 2013순천만국제정원박람회 개최로 동서·남북 간 광역 교통망도 대폭 확충됐다.

도시 통합을 위한 물리적 조건은 완벽하다. 광역 경제권과 인접한 도시와의 연대·협력 전략을 강조하는 최근 국내외 지역 정책과도 부합한다. 하지만 실상은 다르다. 2005년 여수·순천·광양상공회의소가 도시 통합 타당성 연구 보고서를 냈지만 2006년 민선 4기 지자체장 선거 과정에서 불협화음만 표출됐다. 2009년 이명박 정부가 추진했던 행정구역 통합 과정에서 3개 도시는 통합 대상이었다. 순천시민의 통합 발의도 있었다. 여수와 순천은 통합 논의 기구도 만들었다. 그러나 광양시 반대로 무산됐다. 도시 통합의 어려움을 알고 있는 지역 상공인들이 현실적 대안으로 채택한 것이 '도시 연합'이다.

전문가 집단 생각도 비슷했다. 여수·순천·광양상공회의소가 작년에 펴낸 도시 연합 보고서에 의하면 전문가 집단은 도시 통합보다 도시 연합을 선호했다. 전체의 56%는 6년에서 10년 이내에 가능할 것으로 예측했다. 도시 연합은 도시 통합과 다르다. 인접한 도시들이 행정 경계를 초월해 공동 계획을 수립해 각종 사업과 행정사무를 수행한다. 행정구역을 통합하지 않기 때문에 지역 주민 반대는 거의 없다. 일본 간사이 광역 연합이 좋은 사례다.

여수·순천·광양의 도시 연합 논의는 이르면 이를수록 좋다. 1970년대부터 광양만권 성장을 견인했던 석유화학과 철강 중심의 지역 산업 경쟁력이 예전만 못하기 때문이다. 지역 상공인들이 도시 연합을 주창하고 나선 핵심 이유다. 지역사회와 주민이 열린 마음으로 도시 연합을 논의할 때가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