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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성장시대에도 길은 있다
요즘 어디를 가도 형편이 나아졌다는 소리를 듣기가 쉽지 않다. 한국은행이 발표한 2015년 우리나라 경제성장률 추정치는 2.6%로 2013년 2.9%, 2014년 3.3%에 비해 낮아졌다. 통계청이 발표한 지난해 우리나라 가구당 소득증가율도 1.6%에 그치면서 6년 만에 최저 수준으로 떨어졌다. 그러나 지난해 경제지표를 꼼꼼히 살펴보면 부정적인 것만 있는 것은 아니다. 경제성장률은 떨어졌지만 국내총소득 증가율은 6.4%로 높아졌다. 수출액은 8.0% 감소했지만 경상수지는 1000억달러를 넘어서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가계소득 증가는 주춤했지만 소비지출을 억제한 결과 가계수지가 5.6%로 좋아졌다. 혹자는 이를 불황형 흑자라고 폄하하지만 반드시 그렇게 볼 것은 아니다.
현재의 우리 경제를 깊은 불황에 빠져들고 있는 위기 상황으로 보는 시각이 우세하지만, 선진국의 경제 발전 과정을 되짚어보면 우리나라도 선진국이 걸었던 길을 가고 있을 뿐이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우리 경제가 선진국과 달리 단계적으로 성장률이 떨어지지 않고 고도 성장만 지속할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지만 세계 10위권 규모로 성장한 경제가 경제개발 초기 때와 같이 높은 성장률을 유지하는 것은 쉽지 않다. 과거 그렇게 잘나가던 일본이 20년 장기 저성장 국면에서 탈출하지 못하고 있고, 끊임없이 성장할 것 같았던 중국도 벌써 성장세가 급격하게 꺾이는 현상만 보아도 우리의 저성장 국면은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
따라서 현재 우리는 저성장 국면으로 진입하고 있는 국민 경제의 전형적인 모습에 경기적 요소가 더해진 상황이라고 할 수 있다. 성장률 하락으로 가계소득은 감소됐지만 소비지출을 줄여 가계수지를 오히려 안정시키고 있는 가계는 합리적인 대응으로 볼 수 있다. 소득 재분배 상황을 나타내는 5분위 지수도 개선되고 있다.
수출액은 감소했지만 경상수지가 늘어나고 교역 조건은 대폭 개선됐다. 15~64세 고용률(OECD 비교 기준)은 65.9%로 전년 동월 대비 0.6%포인트 상승했다. 소비자물가상승률도 0.7%로 낮다고 걱정하기도 하지만 서민 입장에서는 저물가가 꼭 나쁜 것만은 아니다. 가계부채 증가도 문제지만 부동산 증가를 동반한 것이기 때문에 급격한 고금리로의 전환이 없다면 당장 우려할 일은 아니다.
일본과 일본 국민이 불행한 이유는 20년간의 `저성장` 자체에 있다기보다는 저성장 국면을 부정하고 일시적 불황으로 인식하고 단기적인 경기 부양책이나 경기 조절 정책에 치중했기 때문이다.
저성장 국면을 담담하게 받아들이고 저성장에도 지속 가능한 경제구조로 전환하기 위한 범국가적 노력이 있었다면 지금보다는 훨씬 안정된 일본의 모습을 볼 수 있지 않았을까 판단한다.
따라서 우리 경제의 현 상황을 불황이라 규정하고 움츠리고 좋아질 때를 기다리기보다는 저성장 국면을 인정하고 저성장에서 생존할 수 있는 장기 전략을 구상하고 과감히 치고 나가는 것이 필요하다.
불황을 전제로 한 소비와 투자의 부진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저성장 시대에 예상되는 불확실성을 완화할 수 있는 국가 미래 비전을 정부가 구체적으로 제시하고 제도와 정책에 대한 정부 신뢰를 제고하는 것이 급선무라고 할 수 있다. 저유가와 중국 경제 부진 등 대외 환경이 심상치 않지만 우리는 1997년 외환위기도 슬기롭게 극복한 저력이 있다.
지난해에는 국내 건설 경기가 좋았지만 올해 들어 급격히 식어가고 있다. 게다가 모처럼 상승하던 설비 투자도 지난해 하반기부터 급격히 감소하고 있다. 기업이 경기에 대응해 투자를 축소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지만 과다한 투자 유보가 반드시 해답은 아닐 것이다. 기업이 과거의 투자수익률에 얽매이지 않고 적극적인 투자를 할 수 있도록 하는 투자 환경을 만드는 것은 정부의 몫이다.
개별 가계 입장에서는 불안할 수밖에 없는 미래에 함께 대응할 수 있는 사회적 시스템이 존재한다는 인식을 통해서만 지나친 소비 위축도 완화될 수 있다. 이렇게 볼 때 투자든 소비든 국가 신뢰의 회복이 관건임을 알 수 있고, 이를 위한 계층 간·지역 간·세대 간 국민 대통합 정책의 추진이 시급하다.
[김용하 순천향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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