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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S의 교훈, 대권주자들은 기억하라
김영삼(YS) 전 대통령을 떠나 보내며 소위 정치지도자들은 YS의 공과(功過)에 대한 많은 생각을 했을 것이다. 그중에서 가장 큰 울림은 통합과 화합을 하라는 메시지였고 국민을 위하는 정치를 하라는 것이었다.
불과 3개월 전 광복 70주년 때 국민들이 전직 대통령을 평가한 성적표를 보면 YS의 지지율은 1%로 박정희 44%, 노무현 24%, 김대중 14%에 비하면 바닥이었다. 그러던 것이 장례식 주간에는 호감이 간다는 응답률이 51%로 올라갔다.
대중의 기억은 이렇게 변덕스럽다. 금융실명제, 하나회 척결, 총독부 건물 파괴 등을 해치울 때 지지율은 90%였다. 나는 YS의 높은 공헌에도 불구하고 지지율이 하늘과 땅바닥을 오가는 데는 두 가지 마키아벨리즘적 교훈이 숨어 있다고 본다.
첫째, 절대로 국민을 고통에 빠뜨리지 마라.
둘째, 경제 치세는 남의 머리를 빌릴 수 없다.
YS 재임 시 GDP 성장률을 보면 9.2%(1994년), 9.6%(1995년), 7.6%(1996년) 등으로 대단했다. 그러나 이처럼 황홀한 지표는 마지막해 -5.5%로 처절하게 무너져 내렸다.
세계 주요국의 지도자들이 경제를 얼마나 조심히 다루는가를 보라. 조지 부시는 2008년 금융위기가 터지자 대선 유세 중인 오바마와 매케인을 불러 3개월간 휴전을 부탁하고 우선 위기부터 해결했다. 아베는 5년 동안 경제공부로 절치부심하여 두 번째 총리직에 오를 때 아베노믹스를 가장 앞세웠다. 청년 취업률(98%)의 힘을 배경으로 그는 하고 싶은 정책을 한다. 독일 메르켈이 대처를 능가하는 것도 같은 논리다.
다시 YS의 치세(治世)를 보자. 금융실명제를 발표한 1993년 8월 12일 청와대 출입기자였던 나는 아직도 그 순간의 기억이 생생하다. 곧 폭우가 쏟아질 것 같은 날씨에 오후 6시가 넘은 시간, 기자들은 "뭘까. 설마 금융실명제는 아닐 테고…"그랬는데 금융실명제였다. 당시 경제 상황이 너무 안 좋아 설마 실명제를 하랴 싶었다. 그날 이후 `모르니 용감하다`는 말이 바람결에 나돌았다.
임기 중반 무렵 인기가 시들해지니 부자클럽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과 세계화를 들고나왔다. 그 조건을 맞추기 위해 금융시장 개방을 너무 많이 했다. 국내외 금리 차를 이용해 돈을 벌려고 단기 금융사들이 천문학적인 단기 자금을 끌어들일 때 동남아 금융위기가 발생했다. 한국으로선 절체절명의 순간이었다. 그런데 소득 1만달러를 빨리 맞추려 달러당 원화 환율을 760원대까지 억지로 올리는 대실책을 범했다. 그 바람에 수출 경쟁력이 떨어져 무역적자가 눈사태처럼 확산되면서 한국의 국가부도사태가 터지고 만 것이다.
이런 국난의 사태에서 YS는 최상의 경제장관, 수석을 긴급 배치하고 미·일(美·日) 등과 정상외교를 통해 수습했어야 했다. 그런데 경제가 까막눈이니 "문제없다"는 보고만 철석같이 믿은 것이다. 결국 `머리는 빌리면 된다`는 말은 허사가 됐다. 한보 비리도 YS 자신이 옹정제(雍正帝)처럼 체크포인트를 단단히 지켰더라면 차남이 농단하지 못했으리라.
YS는 훌륭한 개혁군주였으나 경제문제를 `깜짝쇼` 차원으로 다뤄 끝이 안 좋게 되고 말았다. 마키아벨리는 아비의 살인자는 용서해도 자신의 재산을 훔친 자는 용서하지 못하는 게 인간의 본성이라 했다.
환난으로 100만명의 실업자, 가족까지 합쳐 500만명의 삶에 고통을 준 YS의 실책은 남는다. 김무성 손학규는 YS 영전을 지키고, 문재인 박원순 안철수 등은 YS를 조문했다. 그들은 그를 영결하며 이것을 읽었는지 모르겠다. 현재의 거친 글로벌 게임에서 5000만 국민을 먹여 살리는 일은 YS 때와는 비교가 안 되게 치열하고 험난하다. 한국의 주력 산업은 경쟁력을 잃어가고 모든 지표들은 경고음을 발하는 중이다.
그런데 YS 장례식 직후 한국의 부(富), 청년 실업자 구제와 직결된 노동개혁 관련 5개 법안, 심지어 한·중 FTA 비준에서 대권주자들은 어떤 소신을 발표했는가. 또 정주영 회장 탄신 100주년 행사엔 김무성 대표 외엔 야당 대권주자들은 일절 발걸음을 하지 않았다.
박원순 시장의 서울역 공원화는 2017년에 일정을 맞춰 MB의 청계천처럼 빵틀에서 빠른 성공을 구워내고 싶어하는 데자뷔다.
정치판을 보면 노동자가 데모에 나서지 않도록 정치를 해 달라고 외치는 쪽이 국민의 삶을 살찌워 줄 경제법안, 노동개혁은 훼방한다. YS는 떠났다. "경제문제는 5000만개의 영혼이 담긴 유리 항아리처럼 조심히 다뤄라." 대권주자들은 이것이 YS가 남긴 반면교사적 정언(定言)임을 기억하라.
[김세형 매일경제신문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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