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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인의 롤모델, 퇴계와 어머니
어느 나라든 화폐 속 인물 도안은 자기 나라 역사에서 존경받아 마땅한 인물, 즉 롤모델을 선정해 담는 것이 관례다. 세계적 기축통화인 미국 달러화의 기본 화폐에 해당하는 1달러짜리 지폐에 건국의 아버지 조지 워싱턴 초상이 담겨 있는 것이 전형적인 예다. 우리나라 역시 훌륭한 위인들을 화폐의 주인공으로 선정해 국민이 존경심을 갖고 롤모델로 삼도록 하고 있다.
롤모델의 의의는 사람들이 어렵고 힘든 상황에 놓였을 때 그분의 삶에서 가르침과 방향을 찾아 헤쳐 나갈 수 있도록 나침반 역할을 하는 데 있다. 이 점에서 롤모델의 존재는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도 대단히 중요하다. 왜냐하면 근래 우리가 부딪히는 갖가지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열쇠는 사람의 성품, 즉 인성에 달려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요즈음 부쩍 인성과 인성교육이 강조되고 있는 사실이 이를 증명한다. 그렇다면 우리가 롤모델로 삼을 분은 어떤 유형이 좋을까?
우리 역사에는 훌륭한 인물이 많다. 화폐에 담긴 인물도 여러 분이다. 이 가운데 빈부 고하를 막론하고 누구에게나 롤모델이 될 수 있는 사람은 아마도 퇴계 선생이 아닐까? 그는 최고 권력자도, 전쟁 영웅도, 타고난 천재도 아니었다. 그저 외딴 고을 경상도 예안(지금의 안동)에서 태어나고 자라 34세 늦은 나이에 과거에 합격해 관직에 나아간, 시쳇말로 늦깎이였다. 또 학문에 뜻을 두어 열심히 공부해 높은 경지에 올랐음에도 누구에게나 따뜻하게 대했다. 그 시절 사회적 약자들인 집안 여인과 나이 어린 제자, 나아가 하인들의 처지까지 헤아리고 배려했다. 유명한 대장장이 제자의 일화에서 보듯이, 특히 어려운 처지에 있던 사람들의 감동이 컸다.
퇴계 선생은 이렇듯 칠십 평생 동안 공부하고 가르친 것을 삶 속에서 반드시 실천했기에 존경받는 참선비가 될 수 있었다. 그가 500년이 지난 오늘에도 많은 사람으로부터 큰 스승으로 받들어지는 이유다.
퇴계 선생이 그렇게 되기까지는 많은 분들의 영향이 있었다. 그중 특히 주목할 사람은 어머니 춘천 박씨다. 6남1녀 중 막내로 태어난 퇴계 선생은 생후 7개월 만에 아버지를 여의고 홀어머니 밑에서 자랐다. 33세에 혼자가 된 춘천 박씨는 밤낮으로 농사짓고 누에를 치며 집안을 이끌었다. 그러면서 자식 교육에도 열성을 기울여 먼 거리도 마다하지 않고 스승을 찾아 자식들이 공부할 수 있게 했다. 특히 지식 공부 못지않게 몸가짐과 행실의 중요성도 엄하게 가르쳐 7남매 모두를 훌륭하게 키웠다. 시어머니를 섬기는 데도 온갖 정성을 다했음은 물론이다.
퇴계 선생은 가장이자 어머니이자 며느리로서 1인3역을 훌륭히 해내는 어머니의 모습을 늘 가까이서 보면서 자연스럽게 어머니에 대한 효심과 존경심을 키웠다. 이 때문에 퇴계 선생은 "나에게 가장 큰 영향을 끼친 분은 어머니"라고 늘 말하며 받들었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뒤 받은 어느 해 자신의 생일상을 보고 이는 마땅히 어머니께서 받으셔야 할 상인데 드리지 못했다며 물리게 했을 정도로 존경의 마음이 깊었다. 만인의 롤모델인 퇴계 선생의 진정한 롤모델은 바로 어머니였던 것이다.
춘천 박씨는 비록 글은 몰랐으나 퇴계 선생과 같은 훌륭한 역사의 스승을 키워냈다. 학식은 없었지만 온몸으로 본보기가 되어준 참가르침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퇴계 선생은 어머니가 할머니에게 정성을 다하는 모습에서 효를 배우고, 검소하고 행실을 바로 하려는 모습을 보면서 반듯함을 배웠다. 백 마디 말보다 한 번의 실천이 얼마나 큰 가르침인지를 보여주는 사례다.
불우한 환경을 딛고 한평생 오직 자신의 노력과 처신으로 하나하나 쌓아 나간 퇴계 선생, 그리고 몸으로 실천하며 자식을 가르친 어머니 춘천 박씨. 이 분들이라면 혼탁한 세상에서 힘들게 살아가는 오늘의 우리에게, 오로지 지식 공부만 강조하고 말로만 가르치려는 오늘의 부모들에게 롤모델로서 손색이 없지 않을까?
[김병일 도산서원 원장·선비문화수련원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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