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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대한민국'을 위하여
필자는 1945년 일본 제국의 신민(臣民)인 '쿄모토만슈(姜本萬洙)'로 태어났다. 대동아전쟁(당시엔 그렇게 불렀다)과 6·25 동란의 폐허 속에서 아프리카보다 더 빈곤했던 농촌에서 자랐고, 가혹했던 도농격차(都農隔差)와 권위주의 체제 아래 도시로 나가 고난과 갈등 속에서 공부했으며, 1970년대부터 경제 개발과 빈부격차(貧富隔差) 해소에 도전하고 2000년대 전후 두 차례의 경제 위기에 응전했던 70년을 살았다.
일본은 대동아전쟁 때 장정(壯丁)은 징용으로 끌고 갔고, 숟가락, 밥그릇 쇠붙이는 몽땅 공출로 뺏어갔다. 이웃집 월선이 아버지는 사할린 징용 갔다가 돌아오지 못했고, 우리는 대나무 숟가락, 밥그릇으로 송구죽(소나무 껍데기로 만든 죽)을 먹었다. 해방둥이는 태어난 수가 적고, 키도 몸무게도 작다. 6·25 동란으로 북한 괴뢰군이 들이닥쳐 그들의 군가(軍歌)를 배웠다. 학교가 폭격 맞아 초가집 가(假)교사 흙바닥에 멍석을 깔고 공부하며, 미국이 원조한 분유 가루를 먹고, 산에서 나무하고 들에서 일하며 초등학교를 다녔다. 중학교 때 처음 책걸상에 앉아 공부했다. 일제 시대 때부터 선배들이 하던 대로 선생은 '선생 새끼', 경찰은 '순사 새끼'라고 부르고 지나가는 차에는 돌을 던졌다. 고등학교 때부터 도시로 나가 가정교사를 하며 어렵게 공부하던 촌놈에게 부잣집 철조망 담 넘어 흐르는 피아노 소리는 너무나 부러웠다. 대학에 들어가 검게 물들인 군복 한 벌로 사철을 버티고, 최루탄 연기 속에 경찰과 투석전을 벌이며 '매판 자본과 한·일 회담 반대' '3선 개헌 반대' 데모를 벌이다가 1학기 시험을 1학기에 쳐보지 못했다.
1970년 공무원이 되어 처음 부임한 시골 세무서에서 하숙비 1만8000원에 2만여원의 월급으로 공직 생활을 시작했다. 생계유지도 어려운 월급 때문에 몇 번이나 그만둘까도 생각했지만 장가도 가고 아들도 낳고 그렇게 살았다. 재무부에서 부가가치세와 금융실명제를 도입하고 외환 위기를 맞아 밤낮도, 주말도 없이 일했지만 일마다 비판과 반대에 부딪혔다. 2008년 글로벌 경제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추진했던 고환율과 감세 정책도 마찬가지였다. 그런 속에 우리는 세계가 마이너스 성장을 할 때 플러스 성장을 했고, 수출은 세계 12위에서 7위로 올라섰다.
우리 근대사는 부패 왕조에 저항한 동학혁명, 식민 통치에 저항한 독립 투쟁, 친일(親日)·반일(反日)과 좌우 갈등의 건국, 나라가 초토화된 6·25전쟁, 독재를 반대한 4·19혁명, 5·16과 군부 통치를 반대한 민주 투쟁의 굴곡진 역사에서 서글프게도 정의와 법치는 거꾸로 섰다. 광복 70년의 여정에서 대통령이 앞장서 헌법을 파괴함으로써 정부의 권위와 법치는 훼손되었다. 피 흘려 민주적 선거와 시스템을 쟁취하였지만 작동은 권위주의 시대와 크게 변하지 않았다. 여당이 야당이 되어도 상황은 비슷했다. 정부·여당은 계속 비판과 저항의 대상이 되고, '태어나지 말았어야 할 나라'와 '친일·변절·독재의 그들만의 조국'이란 말까지 나오고 있다. 천성산 도롱뇽, 광우병과 촛불 사태, 천안함 자작극 논란, 국정원 도청 의혹은 서글프다. 노조와 전교조와 시민단체의 전투적 투쟁은 너무 자학적이다. 국회는 야당이 반대하면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정부는 무력화되고 있다. 아직도 저항과 반대가 정의로 포장되고 길거리에 떼법과 무법이 난무한다.
21세기를 맞아 세계경제는 요동치고, 강자가 살아남는 것이 아니라 살아남는 자가 강자가 되는 시대가 되었다. 누가 세계 최대 자동차 회사 GM과 최대 은행 시티(Citi)가 파산하리라 생각했는가. 인류사에 전례가 없었던 제로 금리로 무한정 돈을 찍어내며 강대국들은 생존 게임을 하고 있다. 역사의 힘은 동아시아로 이동하고 있고, 잘하면 우리가 새로운 강자가 될 수 있는 기회다.
100여년 전 고래 싸움에 등이 터진 새우였던 우리는 작지만 영리한 돌고래가 되어 산업화와 민주화를 한 세대 만에 이루었다. 친일·변절·독재의 청산을 위한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도 했다. 땅에 뿌리 박고 사는 민초(民草)에게는 친일도, 독재도 빈곤과 함께 생활의 일부였다. 지금 돌을 던져 무슨 소용이 있으랴. 지금의 정부는 조선총독부가 아닌 '우리들의 정부'이고, 지금의 대통령은 독재자가 아닌 '우리들의 대통령'이다. 시위대가 쇠파이프로 내려치는 경찰은 우리의 형제이고, 불 지르는 경찰차는 우리의 세금으로 산 우리 재산이다.
광복 70년이 흘렀다. 선생 새끼, 순사 새끼라고 부르고 차에 돌을 던지던 소년 시절, 저항과 투쟁의 학창 시절 추억은 아직도 나를 우울하게 만든다. 증오와 저항과 자학의 슬픈 역사 유산에서 벗어나 포용과 법치와 긍정으로 함께 가자. 지금 기회를 놓치면 천추의 한(恨)이 된다. 이제 그만하자! '우리들의 대한민국'을 위하여!
강만수 前 기획재정부 장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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