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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PP 시대에 대비하라
지난 18일 미국 하원은 대통령 책임하에 진행된 통상교섭을 의회의 개별 수정 없이 일괄 승인(또는 거부)하는 무역촉진협상권(TPA) 부여 법안을 겨우 통과시켰다.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이 최종 단계에 도달한 가운데 미국 내 정치 상황을 최대 리스크로 본 협상 참가국들은 상원에서 이 법안이 최종 통과될 것인지 예의 주시하고 있다. 차기 대통령 선거 일정으로 볼 때 TPP 합의는 사실상 법안 통과 시기에 달려 있기 때문이다.
TPP는 그동안 한국 정부가 `경제 영토 확장`이라는 표현으로 성과를 과시한 양국 간 자유무역협정(FTA)과 본질적으로 다른 무역협정이다. TPP는 물품과 서비스 교류에서 높은 자유화 수준을 보여주고 투자자 보호와 지적재산권, 국영기업을 둘러싼 경쟁 조건, 무역 기준·인증 등 통상과 관계있는 수많은 분야를 포괄적으로 협상한다. 하지만 이 수준이라면 한·미 FTA와 큰 차이가 없다.
한국 언론들은 여전히 세계 국내총생산(GDP)의 40%에 달하는 경제권 형성 등 시장 규모에 주목하고 있으나 주목해야 할 것은 따로 있다.
TPP의 목적은 경제 규모와 소득 수준이 다양한 12개국이 통일된 무역 규칙에 합의하면서 새로운 국제 통상규칙의 기본 틀을 준비하는 것이다. 미국·EU 간 범대서양무역투자동반자협정(TTIP)과의 연동이 항상 거론되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본래 한·미 FTA를 본보기로 했던 TPP 협상에 한국이 뒤처진 것은 아이러니하다. FTA 성공에 만족한 나머지 다자간 무역협상으로 향하는 세계의 흐름을 놓치는 대가를 낳았을지도 모른다. 물론 잠정 합의 뒤에도 미국과 일본은 한국의 TPP 참여를 환영할 것이다.
하지만 애초에 TPP 협상 참여를 거절하고 한·중 FTA를 우선한 것도, 한·일 FTA 협상 재개를 여러 번 거부한 것도 한국의 결단이다. 잠정 합의 뒤에 참여하면 수정을 요청할 여지는 거의 없다. TPP 참가국들 가운데 한국과 FTA를 체결하지 않은 것은 일본과 멕시코뿐이다. 잠정 합의 후 TPP 참여는 한·중 FTA와 비교되지 않을 정도로 수준이 높고, 사실상 협상이 없는 한·일 FTA를 수용하는 것과 같다. 과거사 문제와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놓고 교착된 대일 외교 기조에서 `특별한 한·일 협상`을 요청하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그렇다고 TPP 불참으로 인한 단점을 간과할 수도 없다. 기업 원자재·중간재 조달이 여러 나라에 퍼져 있어 양국 간 FTA를 여러 개 엮어도 그 네트워크를 커버할 수 없다. 일례로 TPP에는 누적 원산지 인증 규칙이 존재한다. 참가국인 베트남에서 조립한 제품을 미국으로 수출할 때 일본에서 공급하면 누적 원산지에 따라 자유무역 대상이 된다. 하지만 TPP 참가국이 아닌 한국에서 공급할 경우 자유무역 대상에서 제외된다. 원화 강세에 대응해 해외 생산 네트워크를 강화하고 있는 한국 산업계에 괴로운 조건이 될 것이다.
일본은 동남아시아국가연합(ASEAN·아세안)과 이미 누적 원산지 규칙을 실시하고 있다. 잠정 합의 후에도 중국 이외 주요 생산 거점인 아세안의 TPP 참가를 위해 미국과 협력할 것이다.
현실 경제는 생물이다. 어느 나라도 자신이 원하는 대로 시장을 움직일 수 없다. 통상 국가에서 중요한 것은 주요 성장 전략(한국에선 현재 고용)과 무역 규칙이 부합하는지 면밀하게 계산하면서 기회를 놓치지 않고 국익을 확보하는 것이다. 공업화의 역사에 근거한 단순한 수출 기대, 수출은 선이고 수입은 악이라는 무의미한 양국 간 무역수지 판단, 정치적으로 왜곡된 경제 인식 등은 결국 전략적으로 유연한 통상정책을 저해하는 결과를 초래한다.
TPP 시대가 도래해도 지금까지의 무역 자유화와 FTA 활용도를 높이기 위한 민관의 노력이 무산되는 것은 아니다. 초조함을 느낄 필요도 없다. 한국에 필요한 것은 전문가의 정책과 합리적 판단을 존중하고 `신뢰`하며 행동에 나서는 것이다.
[후카가와 유키코 와세다대 정치경제학술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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