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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둑정치'
'成 스캔들' 가장 문제 되는 건 부패로 뭉친 政·官 엘리트가
공적 권력을 私有化했다는 것… 그가 남긴 메모가 뇌관 건드려
自由와 인간 존엄 실현하려면 '한국 정치의 최대 癌' 도려내야
"도둑이 도리어 도둑 잡으라고 외치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과 새누리당을 향해 쏘아붙인 새정치민주연합 문재인 대표의 독설(毒舌)이다. 성완종 메모가 대통령 측근들을 가리키고 있는 터에 노무현 정부 때의 성완종 특별사면에 대해 특혜 의혹을 거론하는 것이 적반하장이라는 논리다.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는 문 대표가 "정신을 잃은 것 같다"고 맞받아쳤다. 뜨겁게 달궈진 선거판에 말 폭탄이 쏟아지는 건 흔한 일이지만 이 경우는 매우 의미심장하다. 한국 정치의 부끄러운 이면인 '도둑정치(kleptocracy)'의 비밀을 건드리고 있기 때문이다.
성완종 사태가 폭로한 한국 사회의 문제는 여럿이다. 고질적인 정경 유착과 금권정치, 만성화된 부정부패 등이 대표적이다. 하지만 가장 큰 문제는 고(故)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이 수십년간 무차별적 로비 대상으로 삼은 여야 정치 엘리트와 관료 엘리트들이 스스로에게 부여된 공적 권력을 철저히 사유화(私有化)했다는 사실이다. 정치·사회·경제·문화 분야 등의 권력 엘리트가 강력한 부패 네트워크를 구축해 자신들의 사적 이해를 위해 공적 자산을 약탈하는 것이 도둑정치의 본질이다.
흔히 도둑정치는 아프리카나 라틴아메리카, 필리핀 같은 정치 후진국의 전유물(專有物)로 여겨진다. 그러나 각각 1조원 대에 이르렀던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의 천문학적 부정 축재는 한국적 도둑정치의 일단을 보여준다. '87년 체제' 들어 정치 관련 검은돈이 차츰 줄어드는 흐름이라고는 해도 도둑정치의 유산이 완전히 극복된 건 아니다. 전 세계에서 우리 사회에만 존재하는 사법부 전관예우의 폐단도 기실 도둑정치의 한국적 표현이다. 소수 지배층이 국가 기구나 법, 그리고 제도를 악용해 공공 자산과 국민 재산을 결과적으로 훔쳐가는 게 도둑정치이기 때문이다.
자고로 정치의 근본은 공공성(公共性)을 실현하는 데 있다. 하지만 성완종 게이트는 정치의 근본인 공공성은 이름에 불과할 뿐 막후에서는 권력 카르텔 집단이 이리떼처럼 달려들어 돈과 이권을 뜯어먹는 데 바빴음을 증명한다. 불행히도 이런 천민적(賤民的) 행태는 보수·진보 정권 모두 크게 다르지 않은 것처럼 보인다. 이 권력 카르텔 안에서는 서로 형님 동생 하면서 끈끈한 의리를 말하고 '우리가 남이가'를 외친다. 성완종의 일생은 그 카르텔 안으로 진입하기 위한 평생의 몸부림에 다름 아니었다. 하지만 막상 그의 유일한 자산이었던 돈이 소진되자마자 의리를 입에 달고 살던 이들조차 일제히 등을 돌렸고 성완종은 용도 폐기되고 말았다.
'정치 기업가' 성완종의 좌충우돌 행로는 경남기업에 대한 1조3000억원 규모의 은행 대출금을 허공에 흩뿌리게 만들었다. 대부분 회수 불능이고 국민 혈세(血稅)로 메워야 하는 돈이다. 결국 성완종 사태와 관련된 정치 엘리트와 관료 엘리트들은 국민의 돈으로 그동안 희희낙락해 온 셈이다. 게다가 수평적 권력 교체 과정에서 여야 모두 그의 로비 대상이었을 것으로 보는 게 자연스러운 추론이다. 보수 정부든 진보 정부든 그에게 중요한 것은 현실 권력의 향배였기 때문이다. 메모에 적시된 대통령 측근들에 대한 성역 없는 수사는 물론이려니와 성완종이 참여정부에서 두 번이나 특별사면 받은 걸 문제 삼는 것도 단순한 '물 타기'라고만 할 수는 없는 까닭이다.
성완종 게이트는 한국 사회에서 정치의 작동 방식과 정치인의 기능이 거의 마피아와 흡사하거나 마적단(馬賊團) 비슷한 것 아닌가라는 의심을 불러일으킨다. 의심하는 사람 스스로를 참담하게 만드는 가공(可恐)할 상상이 아닐 수 없다. 결국 성완종 파문의 치명적 문제는 국가 공공성의 사유화로 압축된다. 정치의 본질이자 국가 운영의 근본 원리인 공공성이 사적 이해관계 밑에 종속되는 현상은 곧 한국 정치의 총체적 위기를 의미한다. 우리 사회의 여러 직역(職域) 가운데 정치인이 가장 불신받고, 현실 정치가 갈등을 해소하기는커녕 오히려 부추기는 데는 다 그럴 만한 이유가 있는 것이다.
하지만 건강한 정치 안에서만 자유와 인간 존엄이 가능하다는 건 만고불변(萬古不變)의 진리에 가깝다. 성완종 메모에는 도둑정치의 줄을 타고 하늘 높이 비상하다가 파멸의 나락으로 추락한 자(者)의 르상티망(원한)과 사회적 고발이 함께 담겨 있다. 그것이 한국적 도둑정치의 뇌관을 건드려 폭발 직전에 이른 지금의 상황은 역사의 우연임과 동시에 필연이다.
민주주의와 법치주의를 파괴하는 도둑정치는 단연코 한국 정치 최대의 암(癌) 덩어리다. 도둑정치가 횡행하는 곳에 좋은 나라의 꿈은 실현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윤평중 한신대 교수·정치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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