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닮은꼴 非理, 판사와 시민운동가
엊그제 현직 판사는 법원에 구속 기소되고, 시민 단체 대표는 법원에 구속영장이 청구됐다. 수원지법 최민호(43) 판사는 사채왕 최모(61)씨로부터 2억6800만원을 받은 혐의로 재판에 회부됐다. 투기자본감시센터 장화식(52) 공동대표는 유회원(65) 전 론스타코리아 대표로부터 8억원을 받은 혐의가 드러났다. 두 사건은 공통점이 많다.
우선 일반인은 접근하기 힘든 성역(聖域)에서 불가침에 가까운 권력을 휘두른다. 법관은 재판 당사자나 변호인들조차 함부로 접근할 수 없도록 스크린 도어와 법원 경위(警衛)가 차단하는 법원이라는 우산 속에서 산다. 시민운동가는 소속 단체 회원들과 어울려 무슨 일을 하든 바깥에는 쉽게 드러나지 않는다. 법관은 탄핵 또는 금고 이상 형(刑)의 선고에 의하지 아니하고는 파면되지 않는다(헌법 106조). 그러니 국회가 탄핵하거나 법원이 실형(금고 이상)을 선고하지 않는 한 파면도 안 당하고 불리한 처분도 안 당하는 철옹성 같은 권력을 갖고 있다. 시민운동이 급성장하면서 시민 단체 대표 권력도 막강해졌다. 정부나 공공 기관, 대기업도 장(長)이 사는 집이나 사무실 앞에서 시민 단체들이 농성하거나 폭로전을 벌이면 벌벌 떤다.
두 사람은 상대방 약점을 정확히 파악하고 악용했다. 갈취범에 가깝다. 최 판사는 변호사법 위반으로 구속돼 재판받다가 추가로 마약 혐의 수사를 받게 된 사채왕에게 돈을 먼저 요구했다. 장 대표도 파기환송심에서 법정 구속된 유씨에게 "돈을 주면 탄원서를 재판부에 내 주겠다"며 10억원을 요구했다. 간덩이도 부었다. 최 판사는 친·인척 계좌나 집 근처 등에서 사채왕으로부터 돈을 받았다. 장 대표는 한 번에 8억원을 서로 약속한 계좌로 송금받았다. 두 사람은 통상 사건보다 동그라미 한두 개가 더 많은 뒷돈 흔적을 계좌에 남겼을 만큼 간이 크다.
그래선지 핑계도 미리 만들어놨다. 최 판사는 전세금을 빌려 썼을 뿐이라고 변명했다. 하지만 검찰은 거액을 무이자로 썼기 때문에 460만원 금융 이득을 봤다고 판단했다. 최 판사가 따로 챙긴 돈도 2억6400만원이나 됐다. 장 대표는 외환카드에서 해고된 기간의 임금을 피해 보상금 명목으로 받은 것이라고 변명했다.
둘 다 조직을 배신하고 조직의 신뢰에 먹칠을 했다. 최 판사는 검찰 출석 전날까지도 소속 법원장에게 "절대로 나쁜 짓 안 했다. 깨끗이 해명하고 돌아올 테니 걱정 말라"면서 사표 제출을 거부했다. 그래서 이례적으로 동료 판사들이 앉은 법대(法臺) 아래에서 현직 판사 신분으로 재판을 받게 됐다. 장 대표의 비리가 발각된 당일 투기자본감시센터는 그를 곧바로 파면(罷免)할 정도로 배신감을 드러냈다.
대법원은 뒤늦게 외부 인사로 구성된 '법원감사위원회'를 설치하고 문제 법관은 재판 업무에서 신속히 배제한다는 내용의 사후 약방문을 내놓았다. 시민 단체들은 몇몇 대표의 비리 사례가 이번뿐 아니었지만 특별한 후속 대책도 없다.
판사나 시민운동가들이 견제받지 않는 이유는 그들만큼은 깨끗하리라는 믿음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국민 신뢰를 손상하는 일이 반복되고 자정 노력은 하지 않는다면 외부에서 칼을 들이대고 수술할 수밖에 없다.
이항수 조선일보 사회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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