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ㆍ추천: 0  
|
|
|
스마트폰, 비빔밥을 탐하다
비빔밥은 몇 가지나 있을까? 문헌에 소개된 것만 해도 20가지가 넘는다. 그중 대표 주자가 전주비빔밥과 진주비빔밥이라 하는데 쓰는 재료도 다르고 그릇도 다르다. 콩나물을 쓰는가, 숙주나물인가에 따라 그 특성이 달라지기도 하고, 곁들여 먹는 국물이 찬 콩나물국부터 선짓국물까지 다양하기도 하다.
육회를 흰 쌀밥 위에 듬뿍 올리고 계란 노른자위를 한가운데 자리 잡게 해서 예쁜 모양을 낸 경우도 있고, 참기름을 쓰기도 하고 들기름으로 비비기도 한다. 그릇이 유기그릇인 경우도 있고 돌솥인 경우도 있다.
안동 지방의 헛제삿밥도 비빔밥 종류 중 하나인데, 고추장 대신 간장으로 맛을 낸다. 결국은 무엇을 어떻게 비비는가에 따라서 맛이 달라지는 셈이다. 비비는 재료는 각 지방에 따라 다르고 개인에 따라 다를 수밖에 없지만 한 가지 같은 것은 모두가 자신만의 요리를 하는 요리사가 되는 점이다.
필자는 비빔밥에 대하여 남다른 추억이 있다. 20여 년 전, 잘 알고 지내던 일본 교수 두 분을 집에 모시고 저녁식사를 대접하였는데, 이분들이 우리 음식에 대하여 이런저런 평가를 하는 것이 신경 쓰여 비빔밥을 시도하였다. 그때 들은 말이 아직도 생생하다. “왜 이렇게 좋은 재료의 맛을 즐기지 않고 마구 섞어 버리지요?” 개별 재료의 맛을 끌어올리는 데 중점을 두는 음식 문화에서는, 재료들을 한데 섞어 비비는 비빔밥의 문화가 쉽게 이해되지 않을 것이다.
음악으로 비유하자면, 개별 연주가 돋보이는 독주나 소 편성 연주도 물론 아름답지만, 비빔밥은 고추장, 참기름 혹은 들기름으로 비빈 다진 쇠고기, 콩나물, 시금치, 당근, 그리고 각종 나물들이 한입 속에서 나름대로의 맛을 이야기하는 심포니와 같아서, 결국 먹는 사람이 음악을 지휘하는 지휘자가 되며, 그 맛은 온전히 비빔밥을 비비는 사람의 몫이 되는 것 아닌가? 오랜 세월 끝에, 이제 겨우 비빔밥에 숨어 있는 깊은 지혜를 알 수 있을 것 같다.
스마트폰이 나왔을 때 놀라워하던 일이 생각난다. 당시 휴대폰에는 없었던 ‘앱’이라는 것을 처음으로 만들어 스마트폰이라는 ‘플랫폼’에 상상을 초월하는 여러 가지 기능을 담아내는 애플의 아이디어에 열광하였다. 사용자가 이 앱을 이용하여 어떠한 일을 하느냐에 따라 스마트폰의 기능은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다는 마법에 전율한 사람들이 스티브 잡스의 팬이 되었다. 스마트폰은 결국 비빔밥 그릇을 제공하고 그 안에 어떤 재료를 선택하여 사용하는가는 전적으로 개인에게 맡긴 셈이다.
그릇을 제공하고 그 그릇에 넣을 재료는 다양한 앱이 만들어 내게 함으로써 이제까지 상상할 수 없었던 세상을 사용자 각자의 것으로 창조할 수 있도록 만들어 준 것이다. 새로운 차원의 비빔밥 탄생! 그러나 비빔밥의 원조인 우리는 스마트폰의 패스트 폴로어로 추격해서 꽤 괄목할 만한 규모의 경제를 창출하였지만 항상 꿀리는 세계 1등이었다. 비빔밥에서 우린 스마트폰을 보지 못하였다! 그나마 이제는 턱밑까지 달려온 중국에 당황하고 있다.
개인의 창의성이 강조되는 시대, 다양성이 적극적으로 수용되는 제품이 요구되는 시대에, 교육도 정치도 산업도 비빔밥의 지혜에서 무엇인가 배워야 한다. 아직도 대기업에서는 그룹 총수의 생각을 읽어내는 사람이 출세하고, 국가도, 크고 작은 단위의 단체에서도 이러한 경향은 크게 다르지 않다.
소수의 생각으로 결정된 획일적인 제도나 제품을 만들거나 강요하기보다는, 다양한 발상을 이끌어 낼 수 있는 비빔밥의 그릇이 필요하고, 나아가 다채로운 생각의 재료를 조화롭게 섞을 수 있는 참기름, 들기름과 같은 윤활제, 조화의 느낌표가 필요하다. 비빔밥의 원조 나라에서 비빔밥의 지혜를 잃어버리는 것 같아 안타깝다. 비빔밥이 융합의 원조인 것을!
[김양한 KAIST 기계공학과 교수]
|
|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