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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일본보다 심각한 이유
한국 경제가 일본의 ‘잃어버린 20년’을 답습할 우려가 있다는 얘기를 정부 고위 관료들이 공공연하게 하기 시작했다. 지난달 전경련 주최 경제 전망 세미나에서 기획재정부 차관보는 경제 성장 둔화, 청년실업률 상승, 임금 상승세 둔화, 민간 소비 위축, 투자 부진 등이 20여 년 전 일본과 닮았다고 지적했다. 본래 낙관적 견해를 갖는 성향이 있는 관료들이 걱정스러운 발언을 하는 것은 그만큼 상황이 좋지 않기 때문이다.
솔직히 한국의 현 상황은 장기 불황 터널에 진입할 당시의 일본보다 안 좋다. 경제성장률부터 보면 일본은 거품 붕괴 시작 이전 5년 동안(1987~1991년) 연평균 5.1%를 기록했다. 한국의 지난 5년간 연평균 성장률은 3.2%에 불과하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2030년대 한국의 잠재성장률이 1%로 회원국 중 최하위로 떨어질 것이라는 어두운 전망을 하고 있다.
디플레이션 조짐도 역력하다. 한국의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지난달까지 24개월 연속 1%대를 기록해 한국은행의 중기 목표인 2.5~3.5%를 크게 밑돌고 있다. 일본은 거품 붕괴가 시작된 1992~1993년에 1%대 물가상승률을 기록했다가 결국 장기 디플레이션 늪으로 빠져들었다. 한국은 내수 부진이 장기화하는 가운데 경상수지 흑자 누적으로 원화값 상승세가 지속돼 디플레이션을 부채질할 염려가 있다.
저출산은 일본보다 심각하다. 일본은 1989년 합계출산율이 1.57명으로 이른바 ‘1.57 쇼크’를 경험한 이후 2005년에 과거 최저 수준인 1.26명으로 떨어졌다. 출산율 하락에 따라 15~64세 생산가능인구가 1995년을 정점으로 줄기 시작했다. 한국의 출산율은 지난해 1.19명을 기록했으며, 생산가능인구는 2017년부터 감소할 전망이다.
가계부채는 어떤가. 일본의 가처분소득 대비 가계부채 비율은 1980년대 75%에서 1990년대 후반에는 125%까지 상승한 적이 있다. 그러나 2008년에는 120%로 낮아졌다. 160%를 넘어선 한국의 현 수준만큼 높지는 않았다.
경제가 금리 인하에 불감증을 보이고 있는 점도 유사하다. 일본은 1991년 7월 6%인 공정할인율을 2000년대 초반 0%대로까지 줄곧 끌어내렸지만 경제 회복의 모멘텀을 만들어내지 못했다. 한국은행이 최근 기준금리를 2%로 사상 최저 수준으로 인하했지만 경제에 별 자극을 주지 못하고 있다. 앞으로 금리를 추가 인하하더라도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을지 의문이다.
국가 채무도 빨간불이다. 일본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일반정부 채무 비중은 1990년 65.1%에서 1995년 81.3%로 상승했다. 저성장에 따른 세입 부족과 무분별한 경기부양책 남발, 고령화·의료·연금 등에 따른 복지지출 확대가 채무 급증의 원인이다. 한국의 일반정부 채무는 현재 GDP 대비 35% 수준이다. 하지만 정부 사업을 대행하는 공기업을 포함한 공공부채는 60%를 넘어 계속 증가하고 있다. 연간 적자 국채 발행 규모도 20조원을 넘어 계속 확대되고 있다.
제조업의 경쟁력 상실은 무엇보다 큰 문제다. 정유·석유화학은 미국의 셰일 혁명 때문에, 조선·IT·철강 등은 중국의 추격 때문에, 자동차·기계 등은 엔저를 무기로 한 일본의 반격 때문에 힘겨워하고 있다. 이자보상배율(영업이익을 금융비용으로 나눈 값)이 100%도 안되는 ‘좀비 기업’이 30%를 넘어 계속 늘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은 지금이 경제를 다시 세울 수 있는 마지막 골든타임이라고 했다. 더 이상 서서히 데워지는 냄비 속의 개구리처럼 잠자코 있어선 곤란하다. 한국은 어쩌면 이미 일본화가 상당히 진행된 상태인지 모른다. 정부는 재정·금융 정책에만 매달릴 게 아니다. 근본적으로 중요한 산업경쟁력 강화에 전력투구해야 한다. 기업 스스로 체질 개선과 경쟁력 강화에 매진하는 것이야말로 경제를 재도약시킬 수 있는 원동력이 될 것이다.
[온기운 숭실대 경제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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