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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칙과 제자리 지키는 사람이 英雄이다
세월호 慘事는 우연이 아니라 변칙王을 영웅으로 떠받드는 돌진형 압축 근대화의 代價
사회 무력감 계속되겠지만 改造 위해 철저히 記錄하고 지식인들 나서 신뢰 쌓아가야
변칙을 재주로 알고, 이에 능한 사람들이 영웅으로 평가받는 한국 사회의 민낯이 송두리째 실체를 드러냈다. 세월호 참사는 우연히 일어난 것이 아니다. 그동안 쌓이고 쌓여 누르고 눌렸던 비리와 부패와 허위가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터졌다. 참사 이후에도 크고 작은 사고가 줄을 잇는 것을 보면서 한국 사회가 위험의 임계치에 도달한 것은 아닌가 하는 우려가 수그러들지 않는다.
돌진형 압축 근대화를 하면서 절차와 과정은 무시한 채 목표만 달성하면 된다는 성장 지상주의의 사회구조가 고착되었다. 여기에 '잘되겠지' 하는 근거 없는 낙관주의, '이쯤이야' 하는 대책 없는 모험주의, '나는 괜찮겠지' 하는 비이성적 자기 예외주의의 문화적 인식이 덧붙여지면서 대형 참사는 예정되어 있었다.
사회 전체가 무기력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한국적인 것을 모두 버리라고 경고한 1997년 외환 위기 때도 이러지는 않았다. 그때는 나라를 되찾으려고 금도 모으고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았다. 그러나 지금은 그저 '미안합니다, 잊지 않겠습니다' 이외에는 아무것도 못하고 있다. 구조적 트라우마에 빠진 것이다.
달포가 훨씬 지났다. 정부가 내놓은 국가 개조의 방안이나 국민의 마음을 어루만지는 방식은 어설프고 실망스럽다. 정치권에서 내놓는 해법은 여전히 거품이 잔뜩 끼어 있다. 길을 못 찾고 뒷걸음만 치는 것에 분노하고 있다. 길을 찾을 수 없다면 길을 만들겠다는 결기라도 있어야 하건만 이 역시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희망 담긴 자산도 보았다. 어느 외국 신문은 '정부의 생명보호는 최악이고, 시민의 자원봉사는 최고였다'고 썼다. 이번 일을 보며 국가 위기가 닥칠 때마다 '관군(官軍)은 어디 가고 의병(義兵)만 남아 있나'는 역사의 기억을 떠올리는 것은 나만이 아닐 것이다. 이번에도 분연히 떨치고 일어난 것은 의병이었다. 진도형(型) 자원봉사자가 이들이고, 그들의 자원봉사 수칙이 결전을 앞둔 의병들이 낭독한 창의문이었다. 학생을 살펴야 한다며 잠기는 배 밑으로 내려간 살신성인(殺身成仁)의 선생님들이 오늘을 사는 의병이다.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지금의 구조적 트라우마는 아주 오래갈 것이다. 위기란 라틴어 어원인 '크리시스(krisis)'가 뜻하듯이 판단하고 결정하는 것이다. 불행한 역사의 반복을 넘어서기 위해 성찰적인 판단과 합리적인 결정이 나와야 한다. 정부개조론, 사회연대론, 책임사회론, 시민교육론…. 한국 사회가 거쳐야 할 재구조화의 방안들이다.
세월호 참사가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원칙을 지키고 제자리를 지키는 사람들이 영웅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참사 이후의 참사를 막는 일은 수천, 수만 쪽의 분량이 되더라도 낱낱이 기록하는 데서 시작해야 한다. 이게 원칙이고 기본이고 제자리이기 때문이다. 그래야 이번 참사가 없었던 일처럼 되지 않는다. 잊지 않겠다는 수많은 노란 리본의 약속은 기록을 만드는 일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한국 사회가 구조적 트라우마를 벗어나 희생이 헛되지 않은 담론을 만드는 일은 지식인의 몫이다. 60만 젊은이의 목숨을 빼앗은 남북전쟁이라는 극한의 고통 속에서 비극의 역사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 지식인들이 머리를 맞대고 토의하고 논쟁하고 정리하여 미국 정신의 대명사인 프래그머티즘이 탄생하였던 사실을 타산지석(他山之石)으로 삼아야 한다.
대한민국의 현대사는 일상의 관점에서 1997년 외환 위기 이전과 이후로 나뉜다고 생각해 왔지만, 이제는 또 하나의 구획이 있어야 할 것 같다. 2014년 4월은 정치적 국면전환용으로서가 아니라 성장에서 성숙으로, 위험에서 안전으로, 불신에서 신뢰로 이행하는 계기가 되어야 할 것이다.
박길성 고려대 교수·사회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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