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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담을 소통이라 말하면 어떡하나
괴담과 사이비주장 판치는 풍토
이념갈등·떼쓰기 만연한 사회
성숙한 의사결정 능력부터 키워야
세월호 사고를 계기로 우리나라를 근본적으로 개조해야 한다는 공감대가 형성됐다. 겉만 번지르르한 하드웨어만 가지고는 선진국이 될 수 없다는 것을 이번에 많은 국민이 뼈저리게 느꼈을 것이다.
대한민국의 정치·경제·사회가 작동하는 소프트웨어를 뜯어 고치지 않으면 진정한 선진국이 될 수 없다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이것은 인적 쇄신이나 정부조직 개편으로만 될 일은 아니다. 헌법 몇 조항 바꾸고 권력구조 바꾼다고 될 일도 아니다.
한 국가사회의 성숙도와 선진화를 결정하는 소프트웨어의 핵심은 그 사회의 집단적 의사결정 능력이다. 아무리 힘들고 괴로운 일이라도 반드시 해야 하는 일이라면 기꺼이 하는 사람이 성숙한 사람이다. 눈앞의 고통이 두려워 이 핑계 저 핑계 대면서 미루다 더 큰 대가를 치르는 사람은 미숙한 사람이다.
한 국가사회도 마찬가지다. 힘들고 괴로운 일이라도 국가의 발전과 이익을 위해서라면 단결해 고통을 감내할 수 있는 사회가 성숙한 사회고, 해야 할 일을 눈앞의 고통과 갈등이 두려워 하지 못하고 우왕좌왕하는 사회는 미숙한 사회다.
고금동서를 막론하고 융성했던 국가들은 모두 성숙한 의사결정 능력을 가졌던 나라들이었다. 쇠퇴한 국가들은 대부분 외부로부터의 침략보다는 내부 분열과 갈등에 빠져들어 지리멸렬하다 역사의 흐름에서 낙오된 국가들이다.
거슬러 올라가면
조선말기 나라가 기울어져 가는 와중에도 권력다툼에 몰두한 당시 지배층이 그랬고, 해방 후 남북한이 이념으로 갈라져 동족 간에 전쟁을 치른 것도 마찬가지다. 가깝게는 1997년의 외환위기도 우리 스스로 문제 해결 능력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우리가 어떤 문제를 가지고 있었고, 또 그 문제를 어떻게 풀어야 하는지 뻔히 알고 있었음에도 당리당략과 이해갈등에 빠져 문제를 질질 끌고 외면하다 나라를 빼앗겼고, 동족 간에 전쟁을 했고, 국제통화기금(IMF)이라는 외세에 의해 개혁을 강요당했다.
지금 한국 사회는 어떤가. 우리는 언제부터인가 의견 차이와 이해 대립을 극복해 모두에게 이득이 되는 합의에 도달하기보다는 이념 갈등과 집단이기주의, 떼쓰기와 기 싸움에 빠져 문제해결 능력과 기회를 상실하고 있다.
여론과 정책의 형성과정에서 전문가보다는 운동가의 목소리가 더 크고, 토론보다는 집단행동이 우선이고, 논리보다는 국민감정이 앞선다. 그렇게 형성된 여론과 정책이 올바른 국가전략일 가능성은 낮다.
소통과 타협은 구분돼야 한다. 화합과 야합은 다른 것이다. 여론을 존중하는 것과 여론에 영합하는 것은 다른 것이다. 지금 한국 정치권은 소통과 화합의 이름으로 고통스러운 결정을 기피하는 영합주의에 빠져 있다.
한국 경제가 계속 어렵다. 이 상태로 가면 한국의 성장잠재력이 소멸돼 한국 경제가 장기침체에 빠질지도 모른다. 지금 한국 경제가 왜 어렵게 됐고, 무엇이 문제고, 또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알 만한 사람들은 다 알고 있지만, 이것을 실행할 국가전략을 우리는 만들지 못하고 있다.
규제개혁이든, 공기업 개혁이든, 관피아 척결이든 고통스럽더라도 반드시 해야 하는 개혁을 하고 성숙한 선진국을 이루기 위해서는 우리 스스로 어려운 결정과 힘든 선택을 할 수 있는 집단적 의사결정능력과 사회적 합의구조를 갖춰야 한다.
괴담이 판을 치고 얼치기 사이비들의 주장이 여과 없이 생방송되는 풍토에서는 올바른 공론과 집단지성을 기대할 수 없다.
구성원 간 견해 차이와 이해 상충은 어느 시대, 어느 나라에서나 있는 일이다. 다만 한 국가의 운명은 그런 갈등을 얼마나 지혜롭게 승화시켜 국가전략으로 발전시키는가에 달려 있다.
지금 대한민국이 겪는 진통은 국가지배 구조의 후진성 때문이다.
우리 스스로 소승적 이기주의를 극복하고, 대승적 국가전략을 세워 이를 실행에 옮길 수 있는 성숙한 의사 결정능력을 가질 때에만 비로소 선진국 대열에 합류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국가개조는 국가 의사결정능력의 회복부터 시작돼야 한다.
김종석 < 홍익대 경영대학장·경제학 kim0032@nate.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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