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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수습, 거대담론을 경계한다
일의 우선순위의 중요성
『국부론』(1776)의 저자 애덤 스미스는 인간 본성에 관한 저서 『도덕 감정론』(1759)에서 불행한 일을 당한 사람은 다른 사람에게도 피해자 자신의 슬픔과 분노와 같은 정도의 슬픔과 분노를 느끼는 일체감을 기대한다고 말했다.
“일체감이 없으면 둘 사이에 진정한 대화가 안 된다. 피해자는 제3자의 냉혹과 무신경에 분노한다.” 스미스는 불행을 당한 사람은 자신의 감정과 다른 사람이 느끼는 감정이 일치하는 것을 볼 때 가장 큰 위안을 받는다고 강조했다. 애덤 스미스는 255년 뒤 한국에서 일어날 엽기적인 비극의 희생자들의 슬픔과 분노에 동참하는 우리의 감정을 잘 대변해준다.
세월호 침몰의 원인과 과정은 속속들이 밝혀졌다. 세월호를 직접 운영하는 청해진 간부들과 그 배후에 있는 세모 실소유주 일족의 탐욕, 그들과 야합한 해양경찰청과 그들과 유착했거나 방관한 해양수산부와 안전행정부의 부패한 관리들, 이 모든 부조리를 떠받치는 관피아의 충격적인 실상들이 낱낱이 드러났다. “물욕에 눈이 어두워 마땅히 지켜야 할 안전규정을 지키지 않았고, 불의를 묵인해 준 무책임한 행동들이 살생의 업으로 돌아왔다”는 박근혜 대통령의 개탄은 과장이 아니다.
지금 희생자 가족과 국민이 바라는 것은 첫째 바다 속의 나머지 탑승자들을 하루빨리 구조하는 것, 둘째 희생자 가족이 납득할 수준과 방법으로 사태를 수습하는 것이다. 그러나 대통령과 정부가 취하는 수습조치는 실망스럽다. 대통령은 희생자 가족과 국민을 상대로 한 직접 사과를 아직도 주저한다. 책임자 문책과 총리의 사표 수리는 사건이 수습된 뒤에 하겠다는 말을 듣는 희생자 가족들이 대통령과 정부가 과연 그들과 일체감을 느낀다고 생각할까. 희생자 가족이 정부에 느끼는 교감은 어느 시점에 가서 거론되지 않을 수 없는 선체 인양 논의 때 요긴한 이해의 바탕이다.
사실상의 ‘식물 총리’가 사태수습에 무슨 역할을 할 수 있는가. 해수부와 해경은 책임회피와 사건의 축소·은폐에 급급할 뿐인데 그 간부들을 그 자리에 앉혀두고 해수부와 해경이 제 기능을 할 수 있을 것인가. 사건발생 한 달 전에 지방선거 출마를 위해 사임한 전 안전행정부 장관도 아슬아슬하게 불길을 피했다고 안도할 처지가 아니다. 박 대통령은 총리의 사표 수리와 관련 관리들의 문책을 “사태 수습 뒤”로 미루는데 언제 어떤 조건이면 사태가 수습되었다고 말할 수 있는가. 민간회사들의 경영진 문책은 법의 판단을 기다려야겠지만 관리들의 문책까지 미룰 필요가 있는가. 그런 조치 없이는 정부에 대한 불신은 해소될 수 없다.
대통령과 관련 부처와 청와대 보좌진은 일의 우선순위를 잘못 잡고 있다. 사고 수습의 큰 틀로 국가개조를 말한다. 국가안전처라는 걸 만들겠다고도 한다. 국가개조는 필요하다. 그러나 국가는 한 정부의 단기정책으로 개조될 수 없는 장기과제다. 사건의 배후에 업자와 관료가 유착한 독버섯 같은 거대한 관피아가 버티고 있다. 그래서 국가개조와 국가안전처보다 급한 것이 만악의 근원인 관피아 척결을 위한 대통령 직속 기구다.
총리의 역할이 의전적인 수준을 넘지 않는데 총리실에 두는 국가안전처가 어느 세월에 한국을 안전한 나라로 만들어 줄 것인가. 희생자 가족과 국민의 마음을 어루만져 정부에 대한 신뢰의 위기를 극복하는 것이 시급한 마당에 국가개조를 들고 나오는 것은 책임소재를 국민 모두에게 분산시키는 꼼수라는 오해를 받기에 충분하다.
다산 정약용의 지혜를 배워야 한다. 다산은 1817년 썩은 나라를 새롭게 개혁한다는 ‘신아지구방(新我之舊邦)’을 위한 『경세유표(經世遺表)』를 썼다. 요즘 말로 국가개조의 마스터플랜이다. 그러나 그는 탐관오리들의 수탈에 하루하루 살아가기도 힘든 백성들의 참상이 눈에 밟혀 『경세유표』를 미완으로 남겨두고 바로 『목민심서』를 저술했다.
다산 연구의 권위자 박석무 다산연구소 이사장의 말이다. “법제도와 행정, 특히 토지를 개혁하여 부패를 청산하고 빈부의 격차를 해소하려고 했지만 그런 거대담론으로는 당장 굶주리고 핍박받는 백성들을 살릴 수 없다고 판단하여 『목민심서』를 저술한 겁니다.
관리들이 공정과 청렴(公廉)을 실천하는 것이 백성을 살리는 길이라고 바로 본 거죠.” 다산은 거대담론인 국가개조는 후세가 실천할 유지로 남기고 현실 문제에 달려든 것이다. 일의 우선순위를 정확히 알아본 다산의 탁월한 안목이다.
정부는 애덤 스미스의 통찰에 귀를 기울여 진정으로 희생자 가족에 다가가 교감하고, 다산이 『경세유표』를 미완으로 남겨두고 『목민심서』를 펴낸 지혜를 모델 삼아 사건 수습의 우선순위를 정확히 매겨 실천에 과감해야 한다.
김영희 중앙일보국제문제 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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