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적 가치에 대한 태도를 통해 자신이 어떤 가치를 추구하고 있는지 드러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경제적 가치에 대한 논의가 간단하지 않다는 사실이 또 다른 문제를 제기한다. 고전파 경제학 이후 여러 사람이 이 문제를 가지고 고민했지만, 시대와 장소를 초월하는 절대적인 가치 기준을 발견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노동가치설이든 잉여가치설이든 제한된 의미를 가질 뿐이다. 무엇이 얼마만큼 가치가 있는지에 대해 사람들이 합의하지 않는다면 거래의 활성화를 통한 경제 발전이 불가능한데, 시장경제가 발달함에 따라 수많은 재화와 서비스의 가격이 형성되면서 이 문제는 상당 부분 해결되었다. 모두에게 공통적인 가격을 바탕으로 재화와 서비스의 가치에 대한 합의에 도달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다음 두 가지 이유로 인해 완벽한 해결책이 될 수 없다는 점을 유념해야 할 것이다.
첫째, 가치가 가격을 결정하는 것이 순리이지만 현실에서는 수요와 공급에 의해 결정되는 가격이 가치를 결정하는 것이 당연시되고 있다. 그래서 이제는 '가격=가치'라는 등식이 상식이 되었다. 이것은 가치를 추구하는 인간의 본성에 비추어볼 때 다분히 유감스러운 현상이다. 코로나19 사태로 목숨을 걸고 환자를 돌보던 의료진의 보수와 헤지펀드 매니저의 보수를 비교해보면 가치와 가격의 역전에 내재한 모순을 인지할 수 있다. 또한 가사노동이나 육아 돌봄 그리고 봉사활동과 같이 가격이 형성되지 않은 서비스의 가치를 제대로 측정할 수 없다는 점도 가격에 바탕을 둔 가치체계의 한계를 드러내는 것이다.
둘째, 모든 것을 가격으로 평가하다 보니 가치 창조(value creation)와 가치 착취(value extraction) 간의 구분이 모호해졌다. 가치 창조는 재화와 서비스의 생산, 유통 과정에서 직간접적으로 새로운 부가가치를 만들어내는 데 기여한 행위를 지칭한다. 반면 가치 착취는 창출된 가치의 배분 과정에 개입해 부당한 방법으로 자신의 몫을 키우려는 모든 행위를 의미하는데, 지대추구행위는 대표적인 사례에 해당한다. 오늘날 시장의 독과점이 꾸준히 확산되고, 실물 부문에 대한 금융 부문의 통제가 더욱 강력해지고 있으며, 포퓰리즘이 판치는 정치 현실로 인해 가치 착취가 점점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다. 더 큰 문제는 가치 착취를 하면서도 가치 창조를 하는 행위로 위장하는 사례가 많아지고 있다는 점이다.
가치 착취 현상이 만연하게 된 사회는 지속가능하지 않다. 그렇다면 이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은 있는가? 원론적으로 말해 모든 재화와 서비스 시장이 완전경쟁과 완전정보 아래에서 작동한다면 가치 착취는 불가능하다.
완전경쟁은 가치 착취를 초래하는 부당한 가격이 책정되는 것을 저지할 수 있으며, 완전정보는 정보를 이용해 부당한 이득을 취하는 것을 막아줘서다. 시장경제가 이런 조건에서 작동한다면 애덤 스미스가 생각했던 이상적인 경제와 카를 마르크스가 경고했던 착취적인 음울한 경제가 하나로 수렴한다. 더 이상 가치 착취가 일어나지 않으므로 잉여가치를 둘러싼 계급 갈등이 있을 수 없으며, 개인선의 추구는 곧 공동선으로 이어질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완전경쟁과 완전정보 아래에서 작동하는 시장경제를 구현할 가능성은 지극히 낮다.
그렇기에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이러한 이상적인 상태에 근접하도록 지속적으로 시장경제를 개혁하는 것이다. 그 첫걸음은 개인, 기업 그리고 정부는 가치를 창조하고 있는지, 아니면 가치를 착취하고 있는지 스스로에게 묻는 것이다. 나아가 가치 착취는 결국 가치 파괴로 이어진다는 점을 유념해야 할 것이다.
[이영환 동국대 경제학과 명예교수]
위기 시대의 생존전략
위기 시대의 생존전략2022년은 엔데믹을 기대하면서 시작됐다. 그러나 2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을 시작으로 미국의 인플레이션과 지속적인 금리 인상, 영국 독일 등 유럽 주요 국가의 인플레이션과 에너지 위기 등 40년 만에 찾아온 글로벌 인플레이션으로 전 세계가 고통으로 신음하고 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자본주의의 새로운 적으로 부상하면서 세계는 ‘분열’과 ‘초갈등’의 시대로 접어든 것 같다. 설상가상으로 이태원 참사는 한국인 모두를 우울증 환자로 만들 만큼 엄청난 트라우마를 낳았다. 최근 위기를 불러오는 세 가지 원인과 대응 전략을 살펴본다.
첫째, ‘제도화된 위험’이 있다. 독일 사회학자 울리히 벡은 <위험사회>라는 그의 대표 저서에서 21세기는 ‘위험이 중심 현상이 되는 사회’가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사회가 발전할수록 평등의 가치보다는 안전의 가치가 더 중요해질 것으로 봤다. “부에는 차별이 있지만 스모그에는 차별이 없다”는 그의 명제는 유명하다. 지구 온난화와 기후 변화,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태원 참사와 같은 사건은 불가항력적인 자연재해보다는 인재에 가까운 사고들이다. 사람에 의해서 만들어지는 ‘생산된 위험(manufactured risk)’인 것이다. 사람들이 만들어낸 위험이니 사람들 간 소통을 통해 대응할 수 있다. 예를 들면 축제 행사의 경우 비상벨을 곳곳에 설치해 위험 발생을 알릴 수 있을 것이다. 일정 이상의 인파가 몰리면 스마트폰 경보를 울려서 위험을 공지할 수도 있다. 제도화된 위험은 아날로그, 디지털 양 방면에서 조기경보 커뮤니케이션 시스템을 강화해 사회적 신뢰를 구축하는 것으로 대응할 필요가 있다.
둘째, ‘초불확실성’이다. 시나브로 한국 경제는 현재 ‘개와 늑대의 시간’에 접어들었다. 어둠이 깔려서 눈앞에 다가오는 물체가 ‘개’인지 ‘늑대’인지 헷갈리는 역대급 불확실성의 시대다. 지난 40년간 환율과 금리 등 거시환경 변수가 이렇게 불확실성에 노출된 때는 처음인 것 같다. 한 달 후 경제 상황을 예측하기 힘들 정도로 고도의 불확실성에 노출된 경우에는 과거의 성공 고정 관념을 버려야 한다. 다양한 시나리오를 준비하면서 유연성을 극대화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불황기에도 기업은 마케팅과 연구개발(R&D) 투자를 평상시처럼 지속하라고 역사는 말해준다. 개인은 기존 루틴에다가 명상과 감사일기 쓰기를 추가해 회복 탄력성을 보존할 필요가 있다.
셋째, ‘정부 실패’가 있다. 정부 실패란 시장 실패로 인한 시장의 비효율성을 제거하기 위한 목적으로 시행한 정부 정책이 목적 달성에 실패해 오히려 문제를 키우고 비효율성을 증가시키는 현상을 말한다. 2008년 이후 세계적으로 각국 정부의 재정 및 통화 정책 등과 같은 적극적 시장개입은 이제 일상사가 됐다. 특히 팬데믹 기간 한국 정부의 빠른 정책 대응은 세계적으로 인정받으면서 우리 국민의 자부심도 커졌다.
그러나 이태원 참사와 같은 허무한 정부 실패는 충격을 주고 있다. 기존 경찰 시스템으로 안전을 담보할 수 없다면 축제 경찰 역할을 수행할 수 있는 안전 용역 서비스 기업을 육성할 필요가 있다. 수많은 폐쇄회로TV(CCTV)로 보행자 수와 교통량을 지켜보면서 일정 수준 이상의 트래픽이 발생하면 특수기동대와 같은 안전 요원이 급히 출동하는 유연한 대응 시스템 개발도 필요하다. 이번 기회에 완벽한 안전 대책이 수립돼야 한국을 방문하고 싶어 하는 전 세계 MZ세대 외국인 잠재 방문객이 한국을 찾을 것이다.
서용구 숙명여대 경영학부 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