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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王室 부활의 비결
'거짓과 배신, 핵심 인물의 의문사, 고답과 부패로 국민의 외면을 받던 집권 세력이 어느 날 이종(異種)의 젊은 피를 수혈한다. 구원투수로 나선 신진 인사는 철저한 대중 소통형 캠페인과 기본에 충실한 정책으로 민심을 파고들고, 개혁을 포용하며 자정 노력을 기울인 집권 세력의 지지율은 극적으로 회복된다….'
윌리엄 왕세손과 캐서린 세손빈 부부의 첫 자녀(로열 베이비·Royal Baby) 출산은 동화 같은 러브스토리 혹은 수천억원의 경제효과로 화제가 되지만, 위기에 빠진 정치 세력이 어떻게 회생하는지를 보여주는 한 편의 드라마로도 읽힌다. 예산·지출 내역에 대해 의회의 감독을 받으며 늘 여론 동향에 신경써야 하는 입헌군주제의 왕가(王家)를 민주주의 정당에 빗대도 된다면 말이다.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이 이끄는 영국 왕실은 총체적 위기를 겪어왔다. 1990년대 찰스 왕세자와 유부녀의 스캔들, 왕실 인사 중 대중과 접촉면이 가장 넓었던 고(故) 다이애나 왕세자빈의 비극적 죽음, 이를 처리하는 왕실의 냉랭한 태도를 지켜본 국민의 왕정 지지율은 역대 최저(50%대)로 급락했다. 2000년대 이후 영국을 덮친 장기적 경기침체와 재정적자는 왕정 폐지를 주장하는 공화론자들에게 힘을 더 실어줬다. 국민은 열악한 공공의료 탓에 환자가 병실 청소를 하고 정부는 청사 지하의 몇 만원짜리 와인까지 끌어내 재원을 마련하는데, 왕실은 호화로운 의전으로 연 수백억원을 쓰면서 탈세 의혹까지 낳으니 시선이 고울 리 없었다.
비슷한 재정 문제를 겪는 네덜란드와 벨기에 등 소국(小國)에선 고령의 국왕이 젊은 아들에게 왕위를 이양하는 정치적 센스를 발휘했지만, 연방 54개국을 이끄는 영국은 가볍게 움직일 수도 없었다. 60대의 왕세자는 "왕 한번 못 해 보고 죽을 것 같다"는 맥빠진 한탄으로 왕국을 더 낡아 보이게 했다.
이런 왕실에 2011년 '수혈'된 이가 캐서린이다. 평민 출신이지만 윌리엄과 10년간의 연애로 대중의 시선과 검증에 그 나름대로 단련됐다. 혼자만의 판단은 아니겠지만, 그녀는 내내 겸손하게 처신했다. 시어머니 다이애나빈의 향수를 불러일으키면서도 좀 더 밝고 건강한 이미지로 차별화했다. 자신의 기본업무(왕실의 번영)에 충실하되, 누구나 이해할 수 있는 평범하고도 감동적인 스토리를 엮어나가고 있다. 어머니의 죽음으로 그늘져 있던 15세의 윌리엄이 자라 당당히 아프가니스탄전쟁에서 복무하고, 이제 아기용 카시트를 직접 부착하고 자동차 운전대를 잡는 건실한 가장으로 자리 잡은 모습을 보고 많은 영국인은 제 자식인 양 뿌듯했다.
'노쇠하고 엇나가던 왕실'이 '열심히 아이를 키우는 젊은 부부의 장(場)'으로 대체되면서 왕정 지지율은 80%대로 복구됐다. 검소한 여왕 즉위 60주년 기념식 등 대중과의 지속적 소통, 왕실의 재정 절감과 투명화 노력도 동반된 덕이다. 영국 왕실의 적자(嫡子) 생산은 윈저 왕조의 정통성에만 관한 일이 아니다. 한때 실망하고 미워했지만, 그래도 사랑과 존경의 대상이었던 왕실이 옛 대영제국 역사의 증거이자 미래 영국의 핵심 브랜드로 유지되기를 영국 국민이 누구보다 바랐을 것이다.
정시행 조선일보 국제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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