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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산층 增稅말고 영국처럼 세출을 줄여라
정부가 어제 내놓은 세제개편안에 따라 국민이 더 내야 할 세금은 앞으로 5년 동안 2조4900억원에 이를 것으로 추산된다. 2011년과 작년 세제개편에 따른 세수 효과가 각각 7300억원, 1조6600억원이었던 것에 비해 훨씬 큰 규모다. 정부는 늘어나는 재정 수요에도 불구하고 세목을 신설하거나 세율을 올리지 않겠다고 했지만, 이런저런 방법으로 사실상 증세가 이뤄지고 있는 것이다.
2010년 19.3%였던 조세부담률(명목GDP 대비 조세총액)은 2017년 21%로 늘어난다. 아직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24.6%)보다는 낮지만 대만, 싱가포르, 홍콩, 일본, 인도, 중국 같은 아시아 경쟁국들(11.9~18.2%)에 비하면 높은 수준이다. 정부 씀씀이를 과감히 줄이지 않은 채 그에 맞춰 세금을 더 거두려 하면 국민 부담은 갈수록 무거워질 수밖에 없다.
올해 세제개편으로 연간 소득이 5500만원(근로자 평균 소득의 150%)에 미치지 못하는 중산층과 서민의 세금 부담은 6200억원 줄어드는 반면 고소득자와 대기업 부담은 2조9700억원 늘어난다. 어차피 세금을 더 거둬야 한다면 대기업과 부자들이 상대적으로 더 큰 부담을 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소득세만 보면 총급여가 3450만원을 웃도는 이들은 앞으로 세금을 더 내야 한다. 전체 근로자 가운데 소득 상위 28%인 434만명의 부담이 늘어나는 것이다. 정부는 이들에게서 1조3000억원을 더 걷고 저소득층에게 1조7000억원을 지원하겠다고 한다. 반드시 고소득층으로 볼 수 없는 유리지갑 월급쟁이들에게 세금 부담을 늘리는 것은 편의주의적인 접근이다.
정부는 1996년에 만든 소득세의 낡은 틀을 그대로 끌고 가려 하고 있다. 당초 1000만원, 4000만원, 8000만원 이하와 8000만원 초과로 나누었던 소득세 과표구간은 2008년에 한 차례 200만~800만원 상향조정됐을 뿐이다. 물가와 소득수준이 높아질수록 중산층 부담이 커지는 구조다.
더욱이 38% 세율이 적용되는 3억원 초과 구간을 신설해 8800만~3억원 구간이 너무 넓은 기형적인 구조가 됐다. 과표 구간을 전반적으로 상향조정해야 하는데도 이번 세제개편에서는 손도 대지 못했다. 보다 과감한 발상이 필요한 대목이다.
이번에 고소득층에 유리한 소득공제를 세액공제로 바꾸고 공무원 직급보조비 같은 사각지대를 없앤 것은 좋다. 오랫동안 숙제로 남아 있던 종교인 과세를 시작한 것은 잘한 일이다. 가업상속 공제 대상을 확대하는 대신 상속재산을 처분할 때 양도소득세를 물리는 제도를 도입한 것도 옳은 방향이다. 중소기업 일자리 창출에 대한 세제 지원을 늘리고 저소득층 근로장려세제를 확대한 것도 필요한 일이다.
그러나 정부는 보다 큰 틀에서 세제 개혁을 추진해야 한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국민개세주의(國民皆稅主義)를 확립하는 일이다. 현재 세금을 전혀 내지 않는 면세자가 근로소득자의 36%를 넘고, 연매출이 4800만원에 미치지 못해 부가가치세 간이과세자로 취급되는 사업자가 전체의 3분의 1이나 된다. 이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지 않고 우선 만만한 대기업과 고소득자들에게만 화살을 겨누면 ’넓은 세원, 낮은 세율’의 방향으로 나아가기는 더욱 어려워질 것이다.
세제 개혁은 기본적으로 재정 개혁과 맞물려 돌아가야 한다. 내년 예산안과 중장기 재정운용계획을 짤 때부터 세출 구조 전반의 획기적인 개혁안이 나와야 한다. 예컨대 ’세금 먹는 괴물’이 된 공무원연금은 내년에만 2조3000억원을 세금으로 메워줘야 한다. 군인연금도 매년 1조원 이상을 지원해야 한다. 조세 원칙의 핵심은 공평과 응능(應能)이다. 공무원만 특등국민 대우하는 건 말이 안 된다.
세입이 늘지 않을 때 세출 자체를 줄인 영국 사례를 참고해야 한다. 정부는 올해 처음으로 중장기 조세정책방향도 내놓았다. 투명하고 일관된 조세정책을 추진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하지만 복지지출을 비롯해 재정수요가 얼마나 늘어날지, 그에 따라 국민의 세금 부담이 얼마나 무거워질지에 대해서는 분명한 방향을 제시하지 못했다. 단순히 ’국민적 합의가 필요하다’는 말로 얼버무릴 게 아니라 얼마의 증세가 필요하고 그 부담은 누구에게 귀착될지 분명한 입장을 밝혀야 한다.
중산층 增稅말고 영국처럼 세출을 줄여라
매일경제신문 기사입력 2013.08.09 00:0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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