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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문수'로 승부하라
'전향 우파'의 상징 김 지사, 그간 나태와 부패에 빠진
보수 우파에게 긴장 불어넣고 종북 좌파 허상도 소신껏 고발
박근혜 품평도 좋지만 '김문수의 큰길' 먼저 보여라
정치판에선 경선 규칙을 정하는 것도 경선의 한 과정이란 점에서 친박(親朴)과 비박(非朴)이 경선 규칙을 서로 자기에게 유리하게 끌고 가려고 얼굴을 붉히는 건 자연스럽다. 경선 규칙을 둘러싼 이 싸움마저 박근혜 전 대표의 일방 독주로 흐르는 것은 새누리당 경선 판세를 보여주는 또 다른 단면이다. 이런 양상에 대한 정치적 판단과는 별개로 이 시점에서 한마디 건네고 싶은 정치인이 있다면 김문수 경기지사다.
김 지사는 '전향 우파'를 대표해온 정치인이다. 좌파 세계에서 '전향'은 곧 변절이고 배신이다. 죄질을 따지면 본래 우파보다 전향 우파를 더 악질로 여긴다. 그렇다고 우파에서 전향 우파를 바라보는 시선이 고운 것도 아니다. 우파는 전향 우파가 지난 시절 좌파에서 정의의 길을 찾으며 우파를 비판하던 체질이 언제 또 도질까 경계의 끈을 놓지 않는다.
김 지사는 이런 정치 환경을 딛고 일어섰다. 내리 국회의원 4선을 하고, 도지사 재선을 했고, 이제 대선 도전까지 나섰다. 전향 우파의 약점을 딛고 강점을 돋보이게 해준 성공 사례다. 올해 신고된 김 지사의 공식 재산은 4억4443만원이다. 이게 정말 그의 재산 전부인지는 알 수 없으나 20년 넘게 정치해온 그가 적어도 권력을 이용해 재산을 불리는 데 큰 욕심을 내지 않은 건 분명해 보인다.
툭하면 '차떼기'에 휘말리고 국회의원을 웰빙 직업 중의 하나로 여기는 이가 수두룩한 보수 정당에서 김 지사 같은 정치인의 존재만으로도 내부는 자극받고 긴장하기 마련이다. 다른 한편으로 김 지사는 대한민국을 헐뜯고 대한민국 체제를 허무는 데만 혈안이 된 종북 좌파 세력에 맞서 싸우는 데도 앞장섰다. 박 전 대표를 비롯한 우파의 어떤 정치인보다 그 일에 몸을 아끼지 않았다.
우파를 향해서도, 좌파를 향해서도 할 말은 다 해온 김 지사의 당당함이야말로 오늘의 그를 있게 한 기반이다. 그가 새누리당 대선 후보가 되겠다고 나선 건 이 성공 기반을 더욱 넓히고 다져 나라를 한번 크게 바꿔보려는 욕심 때문일 것이다. 만약 그에게 다른 주자들과는 다른 그만의 길이 없다면 그가 굳이 이런 욕심을 낼 이유도 없었을 것이다.
안타까운 건 최근 들려오는 그의 말들에선 그런 '김문수의 길'을 짐작조차 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보도를 통해 주로 전해지는 건 그가 국민경선제를 받아들이라는 비박 주자들의 요구를 깔아뭉개는 박 전 대표를 탓한다는 얘기들뿐이다. 예컨대 그는 "지금껏 내게 전화 한 통 없다. 우리(비박 주자)를 동급으로 여기지 않는다. 도대체 우리를 무엇으로 보는 것인가. 아무리 지지율이 낮지만 정말 이런 수모까지 받아야 하는가"라고 박 전 대표를 비판하고 있다.
김 지사가 박 전 대표에 대해 하는 말은 대부분 사실에 바탕을 두었을 것이다. 박 전 대표에게 '불통(不通)' 이미지가 쌓이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이 때문인지 김 지사는 "경선 룰을 바꾸자는 제안은 박근혜를 위한 것이다"는 말도 했다. 그러나 엄밀히 말해서 박 전 대표의 문제는 박 전 대표 스스로 해결해야지 경쟁자인 김 지사가 대신 떠맡아 고민할 일은 아니다.
나라를 떠맡겠다는 정치 지도자에게 무엇보다 중요한 건 국민 앞에 그가 추구하는 가치와 신념 그리고 나라를 끌고 갈 방향을 분명히 밝히는 것이다. 국민이 김 지사에게서 듣고자 하는 것도 그것이다. 국민은 그가 그만의 가치와 신념을 현실로 이끌어낼 뚝심을 갖고 있는가도 눈여겨볼 것이다.
김 지사는 국민경선제가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경선에 불참할 것처럼 말하고 있다. 선택은 그의 몫이다. 다만 상당수 국민은 '김문수의 길'이 무엇인지도 아직 제대로 알지 못하고 있다. 그는 새누리당의 가장 큰 문제점으로 수도권 지지도가 낮은 점을 들고 있다. 그렇다면 그렇게 된 원인이 무엇인지, 그리고 그걸 돌파할 방안은 무엇인지, 박 전 대표가 정책을 잘못 펴온 것은 어떤 것인지 등을 구체적으로 밝히고 일대 논전을 벌여야 한다. 북한 김정은 정권을 다루고 성장과 복지를 조화시킬 방안에 대해서도 다른 주자들과 다른 그만의 길이 무엇인지 국민은 아직 명확히 들은 바가 없다.
경선 룰을 다투는 것도 경선의 일환이겠지만 경선 본무대의 하이라이트는 어디까지나 나라를 어디로 끌고 갈 것인가를 둘러싼 경쟁이다. 이 나라 보수 우파 진영엔 '박근혜의 길'만 있는가. 누가 보더라도 '전향 우파'로 성공한 김 지사에게서 다른 정치인과는 다른 그만의 길을 듣고자 하는 국민도 있다. 그가 진정 승부를 걸어야 할 지점은 바로 여기다. 물론 김 지사에게 그만의 길이 없다면 당장에라도 경선을 접어야 한다. 그게 아니라 정말로 규칙이 불리할까봐 경선을 할까 말까 저울질하는 것이라면 그런 김 지사에겐 딱히 따로 할 말이 없다.
홍준호 조선일보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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