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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포스코를 '동네 기업'으로 추락시키는 사람들
'국민기업 1호'의 성공신화, '오만한 수퍼甲' 된 지 오래
뭉쳐 외풍 막아야 할 상황에 자기들끼리 자리 싸움 골몰
주변서 위세 부리는 인사들 툴툴 털고 국민에게 넘겨야
1968년 포스코가 설립됐으니, 벌써 45년째다. 사람으로 치면 중년 나이다. 탄생의 감격, 성장의 영광을 거쳐 인생의 황금기에 도달한 포스코의 지난날을 의미 있는 단어 몇 개로 압축해 보자. '자랑스러움(pride)'이란 단어가 첫째다. 포스코는 일제강점기와 광복, 6·25전쟁을 거치며 산업 생산시설이 한 줌도 남아 있지 않던 때 전 국민의 힘을 티끌처럼 모아서 일군 '국민기업 1호'다. 오늘의 쌀, 내일의 밀가루를 포기하면서까지 먼 훗날을 위한 "산업의 쌀(철)을 확보하자"며 이를 악물고 도전했던 벤처기업 성공 스토리였다.
이런 '자랑스러움'은 해외에서도 마찬가지였다. 2000년대 초 홍콩특파원 시절 홍콩증시(證市)에서 최고 명성을 구가했던 인도 출신 아제이 카푸르(당시 살로먼 스미스바니증권, 지금은 도이체방크 홍콩 아시아담당)가 "유망한 한국 주식을 꼽으라면 단연 포스코"라며 손가락을 치켜세우던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가치 투자 전도사인 워런 버핏은 지금도 포스코 주식을 애지중지하고 있다.
포스코 임직원들도 늘 자랑스러워 했다. "세계의 철강회사가 다 망해도 포스코는 살아남는다" "중국 1위 바오산(寶山)강철이 최첨단 신공장으로 도전해도 포스코의 기술력과 정신력까지 이길 수는 없다."
그러나 이런 초심이 점차 흔들리기 시작했다. 포스코에는 이미 십수년 전부터 '오만하고 권위적'이라는 아픈 지적이 따라다녔다. 기업을 오래 취재한 기자들은 누구나 아는 내용이다.
포스코는 국내 산업체들로부터 늘 '수퍼갑(甲)이요 상전'이라는 소리를 들었다.
"철강 독점기업이라는 힘을 이용해 기업 위에 군림한다" "포스코가 이익을 많이 내려고 철강재값을 수시로 올리는데, 민간기업의 발목을 잡는 게 포스코 설립 취지인가" 등의 비난도 받았다.
현대차그룹 현대제철이 당진(唐津)일관제철소를 세운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현대자동차가 자동차를 생산하려면 포스코로부터 자동차용 강판을 값싸고 안정적으로 공급받아야 하는데, "포스코 등쌀에 참 힘들었다"는 게 옛 현대 경영진의 일치된 주장이다.
정주영 창업자가 "이렇게 구박받느니 차라리 용광로(高爐)를 짓자"며 제철사업 구상을 밝혔고, 장남인 정몽구 현대차 회장이 2010년 일관제철소 완공으로 이를 현실화했다.
포스코의 오만과 권위에 브레이크가 걸리고, 국내 경제 발전의 선도자 역할로 선회했어야 했는데 불행하게도 자체 시스템이 발동하지 못했다. 흔들리는 요즘 모습도 따지고 보면 오만하고 권위적인 모습이 발현된 것일 뿐이라는 지적이다.
포스코 내부 인사들이 벌이는 회장 자리 다툼의 구태(舊態)에 대해 많은 이들이 우려의 시선을 보내고 있다.
회장(CEO)직을 놓고 포항 출신의 실력자와 창업자(고 박태준 전 명예회장)가 등장하는 것도 심각하지만, 이들을 호가호위(狐假虎威)하며 포스코 출신들끼리 벌이는 투서와 근거 없는 비방 등 사생결단식 싸움은 더 우려스럽다. 똘똘 뭉쳐 외풍을 막아내도 시원찮은데 자리 다툼에 골몰하는 모습을 바라보는 국민들 마음은 착잡하다.
포스코는 상법상으로는 주주들 것이고, 국민 정서상으로는 국민 모두의 몫이다. 국민들이 마음의 벽돌이라는 지분을 한 장 한 장 차곡차곡 쌓아올린 게 오늘의 포스코다. 회사 발전에 좀 기여했다고 '회장은 내 자리'라고 할 정도로 가벼운 기업이 아니다.
포스코가 글로벌 기업에 겨우 턱걸이한 지금 포항·광양의 동네 기업으로 다시 추락시키려는 내부 인사들이 꽤 많다. 그중 상당수는 포스코 주변에서 자리를 꿰차며 여전히 위세를 부리고 있다. 그들이 이제 자리를 툴툴 털고 물러나 포스코를 후배와 국민에게 넘겨 줄 때가 됐다.
이광회 조선일보 산업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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