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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철밥통 [조용헌 살롱]
한반도의 동쪽은 태백산맥이라는 고산준령이 길게 뻗어 있는 산악 지형이고, 서쪽은 비교적 평야 지대가 많다. 김제·만경 평야가 대표적이다.
동과 서가 높이도 다르다. 동고서저(東高西低)를 형성하고 있어서 동쪽의 산악 지대에서 빗물에 씻겨 내린 흙이 몇백만년의 장구한 세월 동안 서쪽으로 흘러내려 퇴적되었다고 보아야 한다. 농작물의 종류와 작황을 보면 대체적으로 서쪽 토양이 비옥한 것 같다.
이는 동쪽보다 서쪽이 훨씬 먹을 것이 많았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태백산맥이 내려온 경상도가 인체의 척추에 해당한다면, 충청과 전라도는 복부와 위장·대장에 해당하는 셈이다. 척추는 중심 잡는 역할이다.
척추에 이상이 오면 중심이 흔들린다. 척추 디스크가 오면 앉고 서기도 불편하다. 바른 자세로 걷지를 못한다. 그래서 경상도는 우리 역사에서 척추 역할을 했다고 생각한다. 충청과 호남은 복부와 위장이니까 먹고 마시는 부위에 해당한다. 한반도의 배를 채우는 밥통 역할은 서쪽에서 담당하였던 것이다.
동은 척추, 서는 밥통인 관계가 수천년 동안 지속되어 오다가 20세기 후반에 들어와 변화가 왔다. 척추 밑에 인공으로 밥통이 생긴 것이다. 나는 그것을 포스코로 본다. 쇠를 제조하는 철강 회사가 포항에 들어섰는데, 그 지점이 척추의 바로 밑인 꼬리뼈쯤에 해당하는 부위이다.
포스코는 인공으로 만든 '철밥통'이다. 이 쇠로 만든 인공 밥통에서 한국의 밥이 나왔다. 한국이 70년대 이후로 고도성장기에 들어서면서 이 철밥통에서 먹여 살리는 산업이 나온 것이다. 한국의 자동차, 배를 만드는 조선, 가전제품에 들어가는 금속, 플랜트 산업 등이 세계적인 경쟁력을 갖추게 된 데에는 포스코의 역할이 컸다고 보아야 한다.
쇠를 만들면서 한국이 단단해지고 뼈대가 생겼다고나 할까. 농경 사회가 계속된 수천년 동안 서쪽에 밥통이 있었기 때문에 서쪽이 상대적으로 밥을 먹고 살았다고 한다면, 동쪽은 굶주림에 허덕이는 상태가 계속되었다. 어떻게 보면 경상도를 비롯하여 한국의 굶주림을 해결해준 인공 철밥통이 포스코이다.
그런데 최근 이 철밥통이 흔들리고 있다. 주가가 확 떨어졌다. 권력 실세가 분탕질을 쳐서 이렇게 되었다는 것이 중론이다. '빙공영사(憑公營私·공익을 빙자하여 사익을 추구함)'의 대표적인 사례이다.
조용헌 조선일보 사외칼럼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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