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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인과 그 '멘토'들
 러시아의 실력자 푸틴은 메드베데프 대통령의 멘토였다. 메드베데프는 고향도 대학도 같은 선배 푸틴의 후광 속에 정치인으로 고속 성장했다. 푸틴은 메드베데프 혼자 힘으론 이룰 수 없었을 정치적 성공을 단기간에 가능케 해줬다.
그는 권위주의 정치 문화에서나 등장할 법한 강력한 멘토였다. 영국의 마거릿 대처는 존 메이저 후임 총리의 멘토였다. 36세에 하원에 진출한 메이저는 대처의 조언과 지원 속에 보수당 내에서 급성장했다. 의원이 된 지 10년 만에 외무장관이 되고 이어 재무장관이 됐다. 대처는 사퇴 후에도 막후 지원을 계속했고 메이저는 이에 힘입어 보수당 경선에서 세 번 승리했다.
미국 외교가에선 사이러스 밴스 전 국무장관이 워런 크리스토퍼 전 국무장관의 멘토로, 즈비그뉴 브레진스키 전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이 매들린 올브라이트 전 국무장관의 멘토로 유명하다.
사전적인 의미에서 '멘토(mentor)'란 경험이 없는 사람에게 오랜 기간에 걸쳐 조언과 도움을 주는 경험 많은 선배를 말한다. 선배의 체험과 유산은 멘토링을 통해 전수된다. 멘토라는 말은 요즘 한국 정치로 들어오면 그 의미가 무한 확장된다. 멘토가 대세이고 유행이라 정치인은 자기 이름만으로 혼자 서는 게 아니라 '○○○과 멘토들'이란 그룹을 형성한다.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이 지난해 서울시장 출마 여부를 고민할 때 "내 멘토는 300명 정도"라고 한 이후 멘토는 정치 무대에서 빠지면 안 되는 핵심 조연이 됐다. 정치인들끼리 서로 멘토가 되어줄 것을 약속하고, 은퇴한 정치인이나 종교인이 누군가의 멘토를 자처하며 '준(準)정치인' 행세를 하는가 하면, 일종의 팬클럽이 특정 인사에게 멘토가 되어줄 것을 강요하는 해프닝이 벌어지기도 했다. 멘토 현상은 지난 대선 때 후보들을 중심으로 등장했던 '○사모' '○사랑'을 연상시킨다.
'멘토 정치'에 긍정적인 측면이 없다고는 하지 않겠다. 수많은 멘토 중 누군가는 그 정치인의 부족한 점을 보완해줄 것이다. 다양한 의견과 시각을 더해줄 수도 있다. 그래서 해당 정치인이 좀 더 균형 잡힌 시각을 갖게 도와줄 수 있을지도 모른다. 여러 분야의 많은 사람에게 귀를 열어놓고 있다는 점에서 칭찬받을 만하고, 나 혼자 다 아는 게 아니라는 걸 인정하는 것 같아 겸손해 보이기까지 한다.
하지만 선배와 유(有)경험자들의 조언과 안내를 따라가면 문제가 해결되는 시대가 아니라는 게 한계다. '한국의 스티븐 호킹'이라 불리는 이상묵 서울대 교수는 최근 인터뷰에서 "평생 멘토 없이 살아온 것이 전혀 예상치 못했던 어려운 상황을 헤쳐나가는 데 오히려 더 큰 힘이 됐다"고 했다. 그는 6년 전 교통사고를 당해 목 아랫부분은 전혀 움직일 수 없는 상태가 됐다. 사고 직후엔 인생이 끝났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전동 휠체어와 컴퓨터의 도움을 받아 강의와 연구를 계속하고 장애인을 위한 기술 개발 아이디어를 내면서 사고 이전보다 더 많은 활동을 하고 있다. 그는 어릴 때부터 어떤 일이 닥치든 남에게 조언을 구하기보다는 스스로 궁리해서 대처했던 습관이 누구도 조언해주기 어려운 낯선 상황에서 도움이 되더라고 했다.
멘토 정치는 정치인 입장에선 관광 가이드를 따라가는 여행처럼 예측 가능하고 안전할 수 있다. 하지만 지금은 지도가 없는 길을 가야 하는 시대이다. 한 나라를 이끌겠다면 화려한 멘토 그룹 없이도 험한 길을 헤쳐갈 수 있는 방향감각과 배짱은 갖춰야 한다. 조선일보 강인선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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