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이 선진국으로 도약하느냐, 중진국 함정에 빠져드느냐를 결정하는 중차대한 선거다. 당장 국내외적으로 풀어야 할 현안이 산적해 있고, 시대적으로 4차 산업혁명의 성공과 실패가 결정되는 분기점이 도래하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 부동산과 불로소득, 경제 성장, 물가 안정, 빈부 격차, 청년실업, 노인 빈곤 등부터 북핵 위기와 미·중 패권 전쟁에 이르기까지 그 해결 방안을 두고 대선후보와 진영별로 주장이 백출하고 있다. 그런데 문제는 치열한 갈등과 대립으로 국론이 분열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한쪽 주장도 그럴듯하지만 반대쪽 의견도 일리가 있다. 왜냐하면 그것은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라 국가 미래에 관한 철학의 차이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한 치 양보도 없이 양측이 충돌하고 있으니 그 모든 피해는 오로지 국민의 몫으로 남을 것이다.

당면한 모든 현안을 일거에 해결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근본적인 해결책은 우리가 추구하는 미래 한국의 모습에 관해 범국민적 공감대를 형성하는 것이다. 국론이 먼저 통일되면 사안별 해결 방향과 우선순위가 결정될 것이다. 그리고 산적한 문제가 하나둘 풀려나갈 것이다. 그것이 이 난세에 국력을 결집해 미래로 나아가는 유일한 방법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꿈꾸는 미래 한국은 과연 어떤 나라일까? 살기 좋은 나라, 행복한 국민, 선진국 등등 말은 쉽지만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모습으로 그려낼 수 있는 사람은 별로 없다. 게다가 그런 비전을 가지고 있다 하더라도 상대방을 설득하고 공감대를 이끌어내기는 더욱 어렵다. 윈스턴 처칠의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는 미래가 없다"는 명언을 상기해보자. 역사란 세상 모두의 성공과 실패의 기록이다. 그 속에는 우리에게 진정 필요한 조언이 있다.


링컨을 선택한 나라, 미국

1809년에 태어난 에이브러햄 링컨은 가난 때문에 정규교육을 1년도 채 받지 못했지만 독서와 독학으로 변호사가 되고 대통령까지 된 입지전적 인물이다. 뉴올리언스 노예시장에서 매매되는 흑인 노예를 보고 노예해방을 꿈꾸게 됐다고 한다. 그리고 1863년 남북전쟁 중 노예해방을 선언한다. 그런데 왜 하필 그때였을까? 노예해방이 남부 경제에 타격을 줄 것이고, 남군 전열도 흩트릴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실제로 노예 18만5000명이 북군에 입대했다는 기록도 있다. 사실 남북전쟁의 가장 큰 원인은 노예제도보다 관세제도였다. 산업 기술력이 낙후한 신생 독립국 미국의 상품은 경쟁력이 없었다. 그래서 북부 산업 세력은 유럽 수입 상품에 고율의 관세를 부과해 국내 산업을 보호했다. 1828년 하원은 관세율을 62%까지 올려 증오의 관세(Tariff of Abominations)로 불렸다. 이렇게 높은 관세의 대가를 지불한 것은 남부의 농업이었다. 존 캘훈은 관세 수입의 3분의 2가 남부에 부과되는 셈이라고 주장했다. 남부에서 수출하는 목화에 대해 유럽 각국이 보복관세를 부과할 것이었기 때문이었다.

남부의 반발로 관세율이 계속 떨어지자 북부에서는 점차 불만이 고조됐다. 관세율을 최고 2배까지 인상하는 '저스틴 모릴 법안'이 1861년 의회를 통과하자 남부연합이 연방에서 탈퇴하고 남북전쟁이 발발한다. 젊은 남자 60만명이 전사한 대량 살상 전쟁인 남북전쟁의 진짜 원인은 노예제도의 존폐가 아니라 고율의 관세로, 미국을 산업화하기 위한 연방제의 유지였던 것이다. 미국은 다민족 이민 국가다. 지금 미국과 캐나다처럼 남부와 북부가 제각기 독립국가로 평화롭게 이웃하며 살아가면 안 됐을까? 그랬더라면 오늘날의 미국은 없었을지도 모른다. 아마도 남미 국가처럼 북부는 이류 산업국, 남부는 여전히 농업국으로 남게 됐을 것이다. 1862년 링컨이 보낸 편지에 "나는 노예를 전부 해방하든, 일부만 해방하든, 하나도 해방하지 않든 연방을 구할 수만 있다면 그렇게 할 것"이라는 구절이 있다. 링컨의 진심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게티즈버그 전쟁터에서 "국민의,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 정부는 세상에서 영원히 사라지지 않을 것"이라고 한 정부가 바로 산업혁명에 성공한 정부이리라.

미국의 산업화를 위해 60만명의 젊은 목숨과 노예해방이라는 정의조차 희생하려고 했던 남북전쟁으로 위인 링컨이 후대에 남긴 유산은 과연 무엇인가?


간디를 선택한 나라, 인도

모한다스 간디는 링컨이 암살된 지 4년 후 인도에서 태어나 좋은 환경에서 자랐다. 19세에 영국 유학을 가서 변호사가 됐다. 그는 남아프리카 여행 중 일등칸 표를 가지고 기차에 올랐지만 역무원은 간디를 기차 밖으로 끌어냈다. 이 일을 계기로 그는 남아프리카에서 인권변호사가 됐다. 1915년 귀국한 간디는 사바르마티 아슈람이라는 종교적 생활 공동체를 세웠다. 이곳에서 간디는 자신이 진리로 생각하는 무소유의 삶을 실천해 보였다. 그는 인도 자치정부를 원했지만 영국은 그의 기대를 저버렸다. 오히려 영국은 인도인의 자유를 제한했으며, 재판 없이 투옥할 수 있는 롤럿법(Rowlatt Acts)을 통과시켰다. 이에 간디는 전국적인 파업을 주도해 맞선다. 간디는 인도의 독립을 위해 사탸그라하(진리를 찾으려는 노력·산스크리트어)라는 비폭력 운동을 전개한다. 간디의 사상은 첫째 비협조 불복종 저항운동, 둘째 평화적 비폭력 독립운동, 셋째 영국 상품 거부와 국산품 애용에 의한 자급자족적 삶 등 세 가지로 집약된다.

원래 간디는 무장 독립운동을 생각하고 있었다. 한 신문사에서 인도 독립을 위한 조언을 구하자 레프 톨스토이(1828~1910)는 편지로 "인도는 영국에 항복한 것이 아니라 영국의 기계문명, 산업문명, 근대문명, 관료제도에 항복한 것이다. 서양의 산업문명을 극복하지 못한다면 인도의 독립은 불가능할 것이다. 그러나 제도혁명은 폭력이 아니라 비폭력 투쟁으로 이뤄내야 하는 것"이라고 답했다. 이에 감명을 받은 간디는 비폭력 평화운동으로 생각을 바꿨다고 한다. 그 후 간디는 톨스토이와 몇 번 서신을 직접 교환했다. 그리고 국산품 애용으로 서양 산업문명을 극복하기로 결심한 것으로 보인다.

인도의 독립을 위해 영국의 산업 제품을 거부하고 베옷을 입고 직접 물레를 돌려 실을 잣고 천을 짜는 등 국산품 애용을 목표로 한 스와데시(Swadeshi) 운동으로 위인 간디가 후손에게 남긴 유산은 과연 무엇인가?


우리가 선택할 나라, 한국

제20대 대선 선거전이 가열될수록 양측은 상대 후보 흠집 찾기 같은 네거티브 공세에 나서고 있다. 이것이 산전수전을 다 겪은 노회한 정치의 달인부터 최첨단 여론조사 전문가까지 두루 포진한 선거캠프에서 나온 전술이라는 사실은, 이것이 우리나라 유권자에게 제대로 먹히기 때문이리라. 정치는 민심의 풍향계라는 말이 있다. 이번 대선에 미래 비전을 검증하는 정책 대결보다 인신공격이 난무하는 데는 유권자에게도 책임이 있다. 정책 대결을 통해 민심을 얻기보다 인신공격을 통해 상대방이 민심을 잃도록 하는 것이 더 효과적인 선거운동이기 때문일 것이다. 아직도 늦지 않았다. 지금이라도 유권자들의 요구만 있으면 네거티브 선거판이 건설적 정책 대결의 장으로 바뀌는 것은 시간문제다.

링컨과 간디는 국부(國父)에, 또 세계적인 위인 반열에 오른 존경받는 정치 지도자라는 사실에 의문의 여지가 없다. 그러나 링컨은 노예해방을 정치적으로 활용했고, 60만명의 고귀한 목숨을 희생하는 전쟁을 불사했으며, 흑인과 아메리카 인디언에 대한 편견을 버리지 못한 사람이었다. 간디는 침략자 영국 제국주의에 협조했고, 인도 독립투사 바가트 싱의 처형을 청원했으며, 카스트 신분제를 옹호하고 흑인을 비하하는 등의 행적을 보였다. 두 사람의 사생활에 관한 비난은 중상모략쯤으로 치부한다고 하더라도 링컨과 간디조차도 흠결 없는 고결한 인격자는 아니었던 것이다.

이런 측면에서도 두 정치인은 상당히 닮아 있다. 그러나 이들이 후손에게 남긴 유산은 서로 다른 정도를 넘어 아예 상반된 것이었다. 링컨이 남긴 유산이 남북전쟁을 통한 산업혁명이었다면, 간디가 남긴 유산은 비폭력과 물레질이었다. 농촌 총각 링컨이 꿈꾼 나라가 산업사회였다면, 산업혁명의 본고장 영국에 유학한 간디가 꿈꾼 나라는 농업사회였다. 지식과 효율을 숭상하며 산업혁명과 경제 성장을 추구한 링컨을 선택한 나라가 받은 유산이 오늘날 초강대국 미국이라면, 자기성찰과 안분지족을 실천하며 농업사회의 목가적 만족을 추구한 간디를 선택한 나라가 받은 유산은 가난한 개발도상국을 대표하는 인도다. 미국의 1인당 국민소득 6만5000달러와 인도의 2000달러, 이 30배가 넘는 엄청난 차이가 바로 미국인과 인도인의 서로 다른 선택에 기인한 것이다.


수신 검증이냐, 치국 검증이냐

어차피 정치인은 국민에게 신뢰받는 직업군이 아니다. 미국 갤럽 직업군별 신뢰도 조사(2019년)에 따르면 정치인은 로비스트와 함께 가장 낮은 점수를 받았다. 이는 소비자를 가장 잘 속이는 직업으로 알려진 중고차 판매원보다도 낮은 점수다. 이것이 정치가 가지고 있는 기본 속성 때문인지, 아니면 유권자의 정치의식이나 수준이 성숙하지 못했기 때문인지는 일단 논외로 하자. 그러나 정치인은 엄정한 잣대로 검증해야 한다. 더욱이 대통령 같은 국가와 민족의 미래에 큰 영향을 미칠 정치인일수록 윤리 도덕 같은 수신(修身)에 관한 검증보다는 국가 전략 같은 치국(治國)에 관한 검증에 훨씬 더 큰 비중을 둬야 할 것이다. 예컨대 링컨이냐 아니냐, 간디냐 아니냐 하는 수신 검증이 아니라, 링컨이냐 간디냐 하는 치국 정책 검증의 장이 본격적으로 열려야 한다.

우리가 정치의 본질까지 바꿀 수는 없을지라도 다음 정부가 우리 후손에게 남길 유산만큼은 바꿀 수 있다. 네거티브 공세와 흑색선전을 일삼는 후보와 정파에 대한 지지를 당장 철회하자. 포퓰리즘이 아닌 미래지향적 정책을 제안하는 후보와 정파에 전폭적인 지지를 보내자. 그렇게만 하면 먼저 후보가 바뀌고, 정파가 바뀌고, 또 한국의 미래가 바뀌게 될 것이다. 오늘 이 순간 우리의 선택이 훌륭한 대선후보를 만들고, 바람직한 정책 정당을 만들 것이다. 그리고 3월 9일 우리의 선택이 성공한 대통령을 만들게 될 것이다. 제20대 대한민국 대통령이 후손에게 꼭 남겨야 할 유산이 단 한 가지 있다면 그것은 '4차 산업혁명의 성공'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김태유 서울대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