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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사하구 맛집-당리동 돌산산장
두부김치에서 오리불고기, 계봉찜까지
훈풍(薰風)이다. 낙동강 물줄기를 바라보고 있는 승학산에도 봄이 오고 있다. 승학산을 찾는 등산객들은 서구 대신동 꽃마을에서 출발했든, 사하구 하단동 동아대 뒤쪽에서 올랐든, 여지없이 이곳에 발길을 멈춘다. 바로 승학산 아래 제석골을 끼고 있는 돌산산장(대표 이준현·사하구 당리동 22-13번지)이다.
돌산산장은 등산객들 사이에선 이미 입소문이 난 곳이다. 한바탕 산을 돌고 난 뒤 갈증을 풀어주는 하산주(下山酒)에는 돌산산장의 동동주만한 게 없다고. 여기엔 파전, 정구지전, 빈대떡, 두부김치가 제격이다. 여럿이 숟가락을 얹어가며 먹는 얼큰한 동태탕, 김치찌개는 또 어떻고….
딱 맞게 익은 묵은지 곰삭은 맛 최고
“다 맛있지…. 하지만 우리 집은 역시 묵은지가 젤이지.”
돌산산장의 주메뉴가 무엇이냐는 질문에 주인장은 대번에 묵은지란다. 자신감과 함께 자긍심마저 느껴지는 목소리다.
깊은 맛과 고소한 맛을 동시에 느껴볼 수 있는 두부김치. 2년 익힌 묵은지가 식욕을 자극한다.
일단 두부김치부터 시작해본다. 묵은지를 주욱 찢어 두부 한 점을 돌돌 말아먹었다. 음, 괜찮은데? 곰삭은 맛이 이런 건가, 코를 자극하지 않고 적절히 발효가 된 듯한!
“이거 얼마나 된 건가요?” “2년됐지. 묵은지는 그냥 먹을 때는 2년 됐을 때가 젤 맛있어. 요리에 쓸 때는 3년 된 게 딱 좋아. 묵은지 고등어조림이나 김치찌개, 뼈다귀탕 말이지….”
그렇구나. 묵은지라고 무조건 오래 된 게 좋은 게 아니구나. 손 대면 흐물거리듯 찢겨나가는 것 보다 알맞게 익어 찢는 느낌이 살아있는 것이 좋은 거구나. 주인장은 먹기 좋게 묵은지를 찢어주고, 젓가락은 분주히 묵은지와 두부사이를 오간다.
씻은 묵은지에 싸먹는 오리불고기 최고 별미
불판 위의 오리불고기가 주인장 손에서 바쁘게 뒤집힌다. 그런데 자세히 보니 여기도 묵은지다. 불판을 빙 둘러가며 겹겹이 올린 묵은지가 오리불고기와 함께 이리저리 뒤섞이며 요란하게 식욕을 자극한다.
묵은지를 넣은 오리불고기(사진 위)와 씻은 묵은지에 싸먹는 오리불고기(사진 아래).
우선 기름이 적절하게 밴, 잘 익은 묵은지를 펴서 오리고기 한 점을 얹어 돌돌 말아 입 안에 넣었다. “햐~. 정말, 맛있다.” 는 말 외엔 달리 표현할 길이 없다. 오돌돌거리는 고기 사이에서 잘 볶인 묵은지가 쫀득하게 씹힌다. 시장이 반찬이라지만 요 오리불고기 양념은 도대체 어떻게 했길래 이리도 맛나나?
주인장 왈, “양념 비법이야 가르쳐줄 수 없지. 김치가 맛있어서 그런 거야.” 역시 묵은지 맛이다.
오리불고기를 다 먹고 난 후 만들어먹는 볶음밥도 별미다.
주인장이 이번엔 씻은 묵은지를 내온다. 과연 씻은 묵은지에 싸먹는 맛은? “아이구, 더 맛있다!” 빛깔이 약간 누릇한데 세월을 먹고 간이 잘 배여 있어 그런지 감칠맛이 난다. 이름 꽤나 있다는 한정식 집의 백김치나 신김치는 돌산산장 묵은지에 비길 바가 못 된다. 이러니 단골들 사이에 씻은 묵은지에 오리고기 싸 먹는 맛을 못 잊는다는 소리가 나올 수밖에.
참, 오리불고기를 굽는 불판이 주물이라는데 이게 꽤 괜찮다. 불기가 철판에 비해 늦으나 돌판에 비해 빠르니 딱 알맞다. 고기가 탄다는 느낌이 없어 좋다. 먹고 나면 남은 양념으로 밥을 볶아 먹어도 된다.
고등어조림은 우리 밥상에서 자주 볼 수 있는 평범한 음식이다. 넉넉한 크기로 썬 무가 한쪽을 차지하고 살이 꽉 찬 고등어가 먹음직스럽게 김을 낸다. 역시 묵은지가 제대로 익었다. 김치가 주욱죽 잘 찢어지는데 이게 바로 3년 묵은 묵은지다. 요리에 들어가는 묵은지는 생으로 먹을 때보다 1년 정도는 더 둬야 양념이 잘 스며든다는 것이다. 김이 모릇모릇 오르는 금방 지은 밥 한 그릇이 생각난다.
음식의 기본은 손맛, 기초는 재료라지 않나. 고등어 역시 주인장이 자갈치에서 직접 장을 봐 싱싱한 놈으로 골라온 것이다. 주말, 집에서는 밥 먹기 싫은데 어머니가 해준 맛깔스러운 집 음식이 생각날 때 추천할 만하다.
약재 향기 진한 한방백숙, 바로 보약이네
한방백숙 역시 주물솥에 담겨 나왔는데 보기에는 여타 한방백숙과 크게 차이가 없다. 우선 국물을 한 숟가락 떴다. 깊은 맛이 난다. 닭의 잡내는 당연히 없고 넘긴 후 입 안이 향긋하다. 약재 향이 이리 은은한가. 엄나무, 오가피, 황기, 천궁, 밤, 대추, 인삼 등 한방재료는 다 들어갔다고 한다.
토종닭으로 끓인 한방백숙. 담백한 국물 맛이 일품이다.
설령 국물음식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라도 한방백숙의 국물 맛은 반할만하다. 국물요리야 요리 직후 따끈할 때 먹어야 맛인데, 요 한방백숙의 국물은 식어도 괜찮으니 할 말 다했다.
닭은 어떨까. 토종닭이라고 하는데 의심스런 사람이라면 다리 한 짝을 떼어보시게. 예전엔 직접 닭과 오리를 잡았지만 요즘은 양산에 있는 농장에서 가져온다고 한다.
전통음식 재현한 묵은지 금관가야 계봉찜
돌산산장 주인장이 강추하는 보양음식은 또 한 가지 있다. 이름하여 금관가야 계봉찜. 꿩 대신 닭으로 요리한 묵은지찜이다. 계봉찜은 옛 문헌에 나온 꿩고기, 침채(딤채, 짐치. 지금의 김치)와 해산물(전복, 굴, 새우, 조개 등)을 끓이고 찌는 음식으로 나와 있다. 들어가는 재료 자체가 예사롭지 않다.
돌산산장의 감칠맛 나는 음식의 시작과 끝인 묵은지. 보기만 해도 입안 가득 침이 고인다.
이 전통음식은 금관가야 시대부터 전해져왔는데 김수로왕의 황후 허황옥의 후손 김해 허 씨 집성촌인 분성(현재 김해시 봉황동)에서 간간히 맥을 이어왔다고 한다. 금관가야 계봉찜은 돌산산장의 주인장이 시가 웃어른으로부터 전수 받아 현대적으로 재현한 것으로 부산국제음식박람회에 출품해 특별상을 받기도 했다.
두부김치에서 오리불고기, 금관가야 계봉찜까지…. 돌산산장의 묵은지는 다 어디서 나올까? 주인장을 따라 지하저장고로 내려갔다. 지하 2층까지 내려가니 차가운 기운이 온몸으로 파고든다. 눈앞에 수천 포기 김치를 담은 박스가 첩첩이 쌓여있다.
“이건 2년 된 거, 저건 3년 된 거. 그리고 저 쪽은 작년에 담은 4천포기.” 설명하는 주인장의 얼굴에는 뿌듯함이 그대로 묻어난다. 고랭지 배추에다 4년동안 간수 쏙 뺀 천일염, 여기에 손맛이 합해지니 돌산산장 묵은지에서는 묵향과 같은 그윽함이 있나 보다.
소박하게, 넉넉하게, 나누며 살고 싶다는 주인장 이준현 대표.
이 음식이 어디서 왔는가
내 덕행으로는 받기가 부끄럽네
마음에 온갖 욕심 버리고 육신을 지탱하는 약으로 알아
도업을 이루고자 이 공양을 받습니다
돌산산장에는 스님들의 ‘공양게송’도 보이고, 신영복 씨의 글씨 ‘처음처럼’도 보인다. 부산 시인 최원준 씨가 우정으로 써준 ‘똥꿈’ 이라는 시도 나무판에 새겨져 있다. 결코 작지 않은 뜻을 품었지만 세상을 소박하게, 넉넉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의 유쾌함이 전해온다.
사실 주인장 한 번 넉넉하다. 품새도 그렇고 인정도 그렇다. 해마다 김장철이면 수천 포기의 김치를 직접 담가 이 가운데 10%는 꼬박꼬박 어려운 이웃에 내놓고 있다. 특히 아이들에게 관심이 많아 매월 한 번씩 낙동초등학교 축구부 아이들 40여명을 불러 삼겹살 파티를 열거나 메뉴에도 없는 돈가스도 만들어준다고 한다. 적으나마 몇 군데에는 수십년째 후원금도 내고 있다고.
올해에는 장사가 아주 잘됐으면 좋겠다는데, 그 이유도 더 많은 사람들에게 더 넉넉하게 나누기 위해서라니 부디 소원성취하시기를….
묵은지 오리불고기(4인분) 3만원, 묵은지 고등어조림 1인 8천원, 한방백숙 5만원 등.
1층 80석, 지하 1층 80석, 단체 이용 가능. 지하 1층 노래방은 무료 이용도 가능하다.
위치는 사하구 당리동 제석골 동원베네스트아파트 진입로 초입. 예약문의는 051-208-4313.
서언주 기자(jool@lycos.co.kr) - 사하인터넷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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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남뉴스(ynnews.pe.kr/(sea4season@nat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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