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긴 강, 높은 산에도 어김없이 가을은 가고 있다. 알록달록한 나뭇잎들을 물들이고 806미터 운주산 너머로 떨어지는 해가 길게 땅거미를 남기고 또 하루를 마감하며 사라져 가고 있다.
높은 산 만큼이나 산그림자의 짙은 적막이 골짜기를 메우다 채워져간다.
어느 틈엔가 차가운 바람이 불어 닥친다. 벌써 물 빨아들이기를 끝낸 퇴색된 잎들이 우수수 떨어진다. 백두대간 남남정맥을 향해 치달리던 높은 산골짜기들 사이로 삐져 들어온 햇살이 화살처럼 쏟아진다.
멀리 1126미터 보현산봉우리가 유난히 석양노을에 빛나는 가을날의 풍광은 이 골짜기의 또 다른 볼거리를 제공하지만 수십년 이어 온 기계장터에 사과농사 아지메들의 마음은 바쁘기만 하다.
청송 영양 봉화 안동 영주, 아니면 더 멀리 31번 국도의 남방한계선 인제 원통에서 가을 구경을 다녀오는 차들이 길게 꼬리를 물고 있는 시각, 칠~팔순 농군들의 마음은 타들어 간다.
오늘 못다 파는 무거운 과일상자들을 노구(老具)들이 다시 가져가야 하기에..... 높은 산을 서쪽에 둔 기계사람들의 애닲은 마음은 늦가을 해넘어 갈 시간이면 이 산들에게 원망의 한숨을 쉴 수 밖에....
그 오랜 세월을 견디어 오면서도 겨울이 닥치기 전에 마쳐야 할 일들이 짧은 가을날의 해 길이를 ......
오백리, 200km 울산만에서 불어와 골짜기를 휘감아 넘어가는 초겨울 바람, 1126미터 산봉우리에서 쏟아져 내리는 산바람에 형산강 기계천변 모래땅에 매달려 있는 사과에 속이 노랗게 꿀맛이 더해지는 계절.....
그 골짜기 끄트머리에 위치한 이 농군들은 그래서 더 행복하지만 나날이 쇠잔해지는 늙은 몸뚱아리가 원망스러울 뿐인데.....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