볕이 따사로운 산골짜기 양지바른 마을은 온통 꽃으로 뒤덮여 있다. 이미 피었다 지는 백목련 옆에 홍목련은 이제 꽃망울을 터뜨리고 있고 산수유와 개나리, 매화가 하얗게 마을을 덮고 있다.

분홍빛 진달래는 덤성덤성한 솔잎 사이로 빠져 들어온 소나무 아래에서 조금이라도 햇살을 더 받으려는 양 온 산들을 불태우듯 선홍빛으로 물들이고 해가 길어지는 것과 때를 같이한 두견새가 구구구 구구 찬란한 봄날을 노래로 찬양하고 있다.

수년 전만해도 산 속의 마을에서 봄 냄새를 맡으려는 등산객들에게 봄 나물을 내놓고 막걸리를 권하던 어르신들의 방문은 꼭꼭 닫힌채 마당에는 퀭하니 비어있다.

이 어르신 어디가 편찮으신가? 딸래 집에라도 다니러 가셨나? 편찮으시지는 않으신지?

봄이면 찾은 지 18년째의 그 마을에 50년 수도한 스님의 목탁소리를 들려주던 딱따구리마저 소리를 그치고 없는데 9순이 다 된 노인들의 모습조차 사라지니 봄이 온 산골마을에는 불여귀만이 하루종일 울어댄다.

그러다 해가 넘어갈 무렵이면 더욱 적막 속으로 빠져든다. 인영(人影)이 사라진 마을에는 침묵만이 흐른다. 비내린 후 소나무 산책로는 정갈하기가 그 어느 곳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말끔히 정리돼 있다. 그 골짜기 마을에 아이들의 해맑은 웃음소리가 들린다면 얼마나 더 아름다운 마을이 될까? 하기사 노인들의 소리마저 끊어지는데 아이들의 소리를 기대하다니....